최영필-박정진, 연봉으로 보는 불혹의 전성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2.10 06: 22

프로야구 선수들의 정년이 연장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기량을 유지한 몇몇 ‘선택된 자’들의 이야기다. 특히 40세를 넘긴 선수들은 여전히 현역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승엽(삼성) 등과 같이 슈퍼스타 출신도 있지만, 숱한 고비를 넘기며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선수들도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최영필(43·KIA)과 박정진(41·한화)이다. 투수로서는 사실상 환갑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두 선수는 올해 나란히 개인 최고 연봉을 찍으며 시즌을 응시 중이다.
어느덧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된 최영필은 지난해(1억3000만 원)보다 1000만 원이 오른 1억4000만 원에 2017년 연봉 계약을 마무리했다. 종전 자신의 최다 연봉이었던 지난해 기록을 소폭 경신했다. 박정진도 지난해 3억 원보다 3000만 원 오른 3억3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역시 개인 최고 기록이다.

보통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전성기 때 정점을 찍는다. 그 후 기량이 떨어지면 그만큼 연봉도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FA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등 떠밀리듯 은퇴를 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두 선수의 연봉 오름세는 분명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연봉 산정에 있어 연차를 덜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불혹의 나이에 개인 최고 연봉을 찍었으니 두 선수의 가치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시련도 적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두 선수는 모두 대학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정상급 선수들이었다. 최영필은 1997년 현대의 1차 지명, 박정진은 1999년 한화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초창기 행보도 비교적 무난했다. 그러나 팀 내 경쟁, 부상 등 제각각의 사유로 시련의 터널도 거쳐야 했다. 동기들이 FA로 거액의 연봉을 손에 넣는 사이, 두 선수의 연봉 그래프는 꺾임을 반복해야 했다.
실제 최영필은 2007년 처음으로 억대 연봉자가 됐으나 2010년 그 타이틀을 반납했다. 2010년 시즌 후 FA 자격을 행사했다 미아 신세가 되는 등 선수 생활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박정진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어깨 통증에 마운드에 서지 못한 날이 꽤 길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군 소화이닝은 단 11⅔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은퇴 위기에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반등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2011년 독립리그에서 뛰며 현역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최영필은 2012년 SK와 계약을 맺었고, 그 후 자신의 쓰임새를 증명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4년 KIA로 이적한 후에는 팀 불펜의 버팀목이 되며 여전한 핵심으로 활약 중이다. 세 시즌 동안 모두 50이닝을 넘겼다. 때문에 “1000만 원 인상은 너무 박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깨 부상에서 탈출한 박정진도 2010년 이후로는 팀 불펜의 핵심적인 몫을 하고 있다. 2012년 첫 억대 연봉의 감격을 맛봤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결과 2013년 시즌이 끝난 뒤에는 FA 자격도 행사할 수 있었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인고의 시간을 버틴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사실 연봉 10억 원 이상의 선수들도 속속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두 선수의 연봉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묵묵히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두 선수는 ‘대박 FA’를 기대하기 어려운 더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지 모른다. 불혹의 전성기를 이어가려는 두 베테랑 투수의 땀방울은 더 진하고 값지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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