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스토리] ‘1인 2역’ 허웅 플레잉코치 도전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2.18 06: 18

SK 베테랑 포수 허웅(34)의 이름 뒤에는 올해부터 새로운 단어가 붙었다. 바로 ‘플레잉코치’라는, KBO 리그에서는 아직 생소한 단어다. 코치로서, 또 선수로서 2017년을 준비하고 있는 허 코치의 발걸음은 바쁠 수밖에 없다.
SK의 퓨처스팀(2군) 전지훈련이 열리고 있는 대만 도류에서 가장 바쁜 코치도 역시 허 코치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이 공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일과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다른 이들은 코치나 선수로서 각자의 일을 하면 되지만 허 코치는 양쪽을 다 신경 써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을 두 배로 하고 있으니 연봉도 두 배로 줘야 한다”는 진지한 농담(?)도 나올 정도다.
보통 오전 7시에 기상을 하는 허 코치는 ‘코치’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현재까지는 캠프의 유일한 포수인 조우형을 지도하는 것이 기본이다. 조우형이 얼리워크조에 속해 있는 날은 8시 전에 숙소에서 나온다. 야간훈련에 조우형도 포함돼도 경기장에 나와야 한다.

그렇게 지도하다 훈련 때는 ‘포수’로 돌아간다. 수비 훈련이나 포메이션 훈련 때도 열외 없이 모두 참가한다. 투수들의 불펜 피칭도 조우형, 권누리 불펜포수와 함께 공을 받는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방망이도 든다. 캠프를 지켜보다보면 코치와 선수 사이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허 코치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야간훈련이 끝난 뒤에도 남들보다 할 일이 많다. 훈련 뒤 코칭스태프 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기본이다. 직접 공을 받은 투수들의 구위를 투수 파트에 전달하기도 하고, ‘막내 코치’로서 다음날 일정을 짜고 이를 선수단에 공지하는 것도 허 코치의 일이다. 여기에 최근부터는 후배들의 ‘훈련 일지’도 쓰기 시작했다. 조우형의 하루를 모두 체크해 기록으로 남긴다. 고된 일과 속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주위 코치들이 “역시 코치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후배”라고 칭찬하는 이유다.
사실 플레잉코치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던 허 코치다. 구단의 제안은 코치 쪽의 비중이 더 높았다. 사실상 현역에서 내려오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1군에서는 뛰지 못했지만 아직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나이였다. 지난해도 2군 52경기에서 타율 3할4리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이재원이나 김민식을 제외한 팀의 나머지 포수들보다 기량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1군에 올라가지 못하면서 스스로도 위축되어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허 코치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아쉬움도 있었고, 막막한 점도 있었다. 플레잉코치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볼 곳도 없었다”라면서 “내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그런 불안감을 지우고 있는 허 코치다. 오히려 열정을 되찾고 있다. 허 코치는 “예전에 플로리다 캠프에서 최정에게 스윙 궤적에 대해 물어보고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 정이한테 고맙다고 했더니, 오히려 정이가 ‘저도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돼 오히려 더 고맙습니다’라고 하더라. 지금 조우형을 가르치는 내 심정도 비슷한 것 같다. 조우형은 2군에 있을 때부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눴던 경험이 있다”면서 신입 코치로서의 각오를 드러냈다.
SK는 이재원 김민식을 제외한 나머지 포수들이 모두 1군 경험이 없다. 둘 중 하나라도 부상을 당할 경우 비상이 걸린다. 이제는 코칭스태프의 일원으로 구단의 생각도 공유하는 허 코치 또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틈틈이 훈련을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포수 마스크를 쓸 때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허 코치는 “시범경기 출전은 나중에 가봐야 결정이 될 것 같다”라면서도 코치와 선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끔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어려운 과제지만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 동료들을 격려하는 에너지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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