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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시네마]'해빙'='곡성'+오싹 '살인의 추억'+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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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유진모 칼럼]‘해빙’(이수연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은 흥행성적과 상관없이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라질 영화임에 틀림없다. 서스펜스나 미스터리 면에선 ‘살인의 추억’과의, 스릴러나 호러 면에선 ‘곡성’과의 비교도 불가피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4월의 한강변으로 내려가 웬 괴물체를 클로즈업한다. 머리 없는 시체다.

강남에서 개업의를 했던 승훈(조진웅)은 경영난으로 병원 문을 닫고 고급아파트와 외제차와 아들마저도 아내 조수정(윤세아)에게 모두 넘긴 채 미제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던 경기도의 화정 신도시 개인내과병원에 월급쟁이로 내려온다. 숙소는 정육점과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는 성근(김대명) 소유 건물의 원룸을 임차했다.

성근은 도망간 필리핀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경수, 두 번째 아내, 그리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 정노인(신구)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성근의 아내가 정노인을 모시고 내원해 내시경검사를 의뢰한다. 수면내시경검사를 시술하던 승훈은 아직 마취에서 깨지 못한 정노인의 입에서 “팔 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머리는 아직 냉장고에”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화정은 미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지만 신도시 개발로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사건이 서서히 잊혀져가던 터.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던 아줌마들은 정노인을 보고 “아내와 첫째 며느리가 사라진 의심스러운 살인 용의자”란 말을 주고받는다.

전직 형사라는 정체불명의 50대 남자 경환(송영창)은 승훈이 화정에 들어왔을 때부터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며 감시해온 인물. 그는 17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성근 부자를 지목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퇴직 후에도 부자의 뒤를 캐고 있다고 승훈에게 밝히고 협조를 부탁한다.

병원에서 승훈을 돕는 간호조무사 미연(이청아)은 화정 토박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입이나 가정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수시로 수백만원짜리 명품 백을 바꿔치우고 있었다.

성근은 승훈에게 친절한 듯하지만 왠지 뭔가 감추는 듯하고 때론 그를 감시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지나치리만치 친절을 베푼다. 승훈이 성근에게 거리감을 둘 즈음 두 사람은 식당에서 꽤 많은 소주를 마신다.

다음날 잠에서 깬 승훈은 비몽사몽간에 정육점 냉동고 안에서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여성의 머리를 봤고 그것을 가져와 자신의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뒀다고 생각한다. 그 후 그는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가운데 그 머리가 현실인지 꿈인지 애매모호한 혼란을 겪으며 공포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수정은 아들의 캐나다 유학문제를 의논하러 승훈을 찾아오지만 승훈과 심하게 다툰 뒤 실종된다. 그리고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승훈을 지목한다.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스럽다. 더블 맥거핀(헛다리 짚기)의 페이크 기법으로 스릴러 장르가 주는 쫄깃한 긴장감과 뒤통수를 내리치는 반전의 묘미를 충분히 활용할 줄도 안다. 시작부터 전편에 걸쳐 흐르는 음산하고 괴기한 분위기는 ‘곡성’과는 또 다른 톤으로 숨 조절을 잘 못하게 만들 정도다.

승훈의 1인칭 시각에서 전체적인 스토리가 펼쳐지지만 정작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그의 심리를 역추적해가는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사건전개와 카메라 앵글 그리고 사운드도 훌륭하다. ‘4인용 식탁’(2003)에서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밀도 깊게 표현한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연출력은 확실히 일취월장했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 역시 연출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했다. 신구는 말할 것도 없고, 공포와 의혹 등을 담은 섬세하고 다양한 내면의 심리를 표현한 조진웅의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착한 듯, 악한 듯, 의뭉스러운 듯 정체를 모를 속내를 담고 사는 성근 캐릭터를 완성한 김대명도 연기파스타의 탄생이다.

뭣보다 사회의 부조리와 병폐에서 출발한 시나리오의 힘과 그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수정으로부터 “그나마 주식 안 한 게 다행”이라는 핀잔과 조롱을 받는 승훈은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 이면의 그림자 역시 짙은 강남과 경제성장의 양면을 은유한다.

의대를 나와 부잣집 딸과 결혼해 강남의 ‘의사 사장님’이 됐지만 종합병원의 공세에 밀려 ‘회사’를 말아먹고 가정마저 잃은 채 시골의 초라한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개인병원과 개인변호사사무실이 종합병원과 대형로펌에 밀려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의대나 법대를 나오면 성공이 보장됐던 시절이 사라진 것이다. 승훈의 일시적 질주와 그 후의 급전직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경제성장의 겉모습과 실상의 모순이고, 빈부의 격차가 ‘금수저’와 ‘흙수저’ 문제로만 논의할 수준이 아님을 웅변한다.

더불어 이미 일상다반사가 돼버린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까지 손을 댄다. 경수는 친구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며 필리핀으로 떠날 것을 강요당한다. 세계 속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외국인 관광객과 정착민들의 홍수가 안정화된 듯한 한국이지만 아직도 사회 깊은 곳엔 차별과 편견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핵심은 함부로 정의 내리거나, 절대 일관된다고 믿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인간의 심리다. ‘살인의 추억’의 연쇄살인범은 비가 오는 날 특정 색과 연관된 여자에 집착하며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로 심리를 다스렸다면 이 영화의 용의자들은 정체성과 동기가 더욱 불분명하다. 아마도 그것은 과학과 경제는 앞서가지만 인간성과 인간관계는 오히려 퇴보하는 척박하고 삭막한 현대인의 외롭고 쓸쓸한 심리상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승훈의 시점에서 시퀀스들을 얽히고설키게 묶어놨기에 관객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런 맥거핀 장치는 후반에서 훌륭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판단하기 힘든 게 개연성의 미흡함 탓이다. 스릴러가 전개되거나 해결되는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은 복잡한 실타래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기능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충격과 동시에 이해가 찾아와야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서늘하고 의미가 모호해 비교적 단순하게 충격적이고 무서울 따름이다. 117분. 15세 이상 관람 가. 3월 1일 개봉./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해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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