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 한갑수 “과거 연기 포기할 뻔...버티길 잘했죠”
OSEN 유지혜 기자
발행 2017.03.07 07: 48

(인터뷰②에 이어서)연기를 시작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배우 한갑수는 “버티길 잘했다”고 웃음 짓는다. 하지만 연극배우로 30년을 살아온 한갑수의 연기 인생은 그가 활약한 ‘불어라 미풍아’ 만큼이나 사연 많은 역사였다.
지난 달 26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에서 한갑수는 김대훈 역을 맡아 빛을 받았다. “아바디”를 외치며 10살 지능으로 극의 ‘사이다’가 된 한갑수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제는 “아바디”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시청자들에 ‘아!’를 외치게 만드는 배우가 됐다.
한갑수에게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보물 같은 기회였다. 그동안 연극 무대에서 활동 하다가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경찰로 단역을 시작하며 브라운관에 첫 발을 내딛었다. TV에 나오기 시작한 지는 4년 남짓. 그는 “주로 경찰, 면접관, 회장과 같은 직책으로 불리는 역할을 맡아왔다”며 웃음을 지었다.

“TV에 단역으로 계속 나오다가 처음으로 이름이 주어진 건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였다. 당시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찾는다는 제작진의 말에 아는 후배가 저를 추천했고, 그 때 최진혁 씨 아빠 역할을 맡으며 구영배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작품에서 김진민 PD와의 인연이 생겨 ‘결혼계약’에도 출연하게 됐다.”
그는 ‘불어라 미풍아’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이휘향과 ‘결혼계약’에서는 남매 호흡을 맞췄다. 당시 이휘향에 간 이식을 해준 게 바로 한갑수. 한갑수는 그 때의 인연으로 이번 작품에서 이휘향이 많이 챙겨줬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결혼계약’은 ‘불어라 미풍아’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결혼계약’ 때 김진민 PD가 다시 불러줬는데, 처음엔 2회 우정출연을 요청했다. 간 주러 온다고 말이다.(웃음) 그러다 연극 연습 중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3일 동안 섬에 들어가서 촬영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작가님께서 대본을 쓰다가 제 출연분이 늘어났다는 거다. 그렇게 7회부터 계속 나왔다. ‘결혼계약’에 출연하는 걸 본 ‘불어라 미풍아’ 김사경 작가님이 저를 캐스팅했다.”
인연이 인연을 불러 ‘불어라 미풍아’에서 활약할 수 있었지만, 한갑수는 30년 동안 연기를 이어오며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다며 회상했다. 1987년 데뷔해 배우로 산지도 어느 새 30년이 됐다는 그는 아내와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만났다며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10년 하다가 한 번 그만 둔 적이 있다. 노가다(노동 일)를 하면서 돈을 많이 모았다. 사람이 간사한 게 돈이 생기니 다시 연기를 하고 싶더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하면서 죽고 싶단 생각을 했다. 다시 연기를 시작하며 연희단거리패 단원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아내도 만났다. 연극이란 게 불안정한 생활이니, 원래는 독신주의자였는데 아내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그가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바로,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가 아팠을 때였다. 과거 아내가 많이 아파 서울의 병원으로 올라와야 했을 때, 든든한 울타리였던 극단을 떠나 대학로에 뚝 떨어지니 정말 힘들었다며 한갑수는 당시를 떠올렸다. 불안정한 돈벌이로 아내를 고생시킨 건 아닌지. 그는 아내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삼선시장 근처에서 지하방을 얻어 살았다. 연극을 끝내고 아내와 손을 잡고 길을 내려오는데 노점상에 천도복숭아가 탐스럽게 진열돼 있었다. 아내가 먹고 싶어 하길래 주머니를 봤더니 2천원 밖에 없었다. 한 알이라도 사려고 했더니, 아내가 가만히 손을 잡으며 ‘그냥 가요’라고 나를 끌더라. 그 길을 걸어가는데 눈물이 그렇게 났다. 그게 연극을 20년간 했을 때였다. 반평생을 연극하며 살았는데 아픈 아내에게 천도복숭아 하나 못 사주는 상황에 너무 자괴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가족은 그가 배우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줬다. 그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딸을 키워주다시피 했다”며,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아내와 가족들에 고마움을 전했다. 다행히 아내는 깨끗이 나았고, 학교 강연도 나가고, 1년에 연극 두 세작품은 하게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덜었다고. 한갑수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단다.
“‘불어라 미풍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줬다. 특히 어머니께는 50평생 한 번도 못한 효도를 하게 돼 좋았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감사함을 느꼈고, 우쭐한 마음을 경계하게 됐다. 사람이 살다보면 음지도, 양지도 있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연기를 잘하지만 아직도 기회를 얻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도 이런 기회가 제게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하다.”
한갑수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배우란 누군가가 나를 찾아줘야 하는 숙명을 지녀서”라고 대답하다가도 “꾸준하게 방송으로, 연극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찾아뵙고 싶은 게 제 욕심이자 소망”이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평생 배우로 살다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한갑수의 말에는 절실함마저 담겨있었다. 아직도 그는 연기에 목말라 있는 ‘연기 청춘’이었다. / yjh0304@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