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국민 감독도 막지 못한 '고척 참사' 원인은?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3.08 05: 58

논란투성이 발탁부터 연이은 부상까지
'타고'는 허상, '투저'는 현실 증명
'삿포로 참사'부터 '도하 참사', '타이중 참사'까지. 한국야구 역사에 남은 오명의 순간들이다. 이제 그 이름 뒤에 '고척 참사'가 새겨질 전망이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은 6일 이스라엘전, 7일 네덜란드전에서 내리 패했다. 2연패로 본선 2라운드 진출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 당연히 기대도 컸다. 그러나 한국은 고척 참사로 인한 생채기만 안은 채 다른 참가국의 선전을 안방에서 지켜보는 입장이 됐다. 너무도 맥없는 패배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격 논란부터 부상까지. 바람 잘날 없던 선수단
최근 몇 년의 국제대회를 살펴보면 대표팀에는 늘 ‘최약체’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번 WBC 대표팀은 유독 심했다. 김인식 감독조차 “항상 최약체라고 하던데 이번이 가장 약한 것 같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유독 바람 잘날 없었다. 가장 큰 공백은 메이저리거의 불참이었다. 추신수(텍사스)는 소속팀이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입지가 불안한 김현수(볼티모어)는 정중히 고사했다. 강정호(피츠버그)는 음주 운전으로 징역형에 처해 출전 자체가 불가능했다. 박병호(미네소타)는 부상에 시달렸고 류현진(LA 다저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현역 메이저리거’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 한 명뿐이었다. 이는 대표팀의 면면이 급락한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고 KBO리거들 중 최고의 선수들로 명단을 꾸리지도 못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대표팀 단골’ 김광현(SK)과 강민호(롯데)가 나란히 수술과 부상을 이유로 낙마했다. 정근우(한화) 역시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고사의 뜻을 밝혔다. 불펜에서 활용가치가 높았던 이용찬(두산)과 임정우(LG)도 대회를 앞두고 출전이 좌절됐다.
‘자격 논란’도 일었다. 지난해 KBO리그 40경기에 나와 75⅓이닝 평균자책점 6.33으로 부진했던 장시환(kt)의 발탁은 불을 지폈다. ‘역대 최고령 태극마크’ 임창용(KIA)에게 의문부호를 남기는 시선도 많았다. 이들의 발탁은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이들의 불참으로 이어지며 비판을 샀다. 지난 시즌 구원왕 김세현(넥센)과 홈런왕 최정(SK)도 밀렸다. ‘세대교체 기수’로 꼽히던 구자욱(삼성)과 박민우(NC)의 이름 역시 명단에 없었다. 여러 모로 잡음이 많은 대표팀이었다.
▲ ‘국제 규격’과 안 맞는 S존의 나비 효과
‘타고’는 허상이었지만 ‘투저’는 사실이었다. KBO리그 스트라이크존(이하 S존)은 위아래보다 좌우 폭이 넓다. 반면 메이저리그(MLB) S존은 위아래 폭이 넓은 편이다. KBO리그 S존이 가로 직사각형 모양이라면 MLB S존은 정사각형 꼴. 게다가 KBO리그의 S존은 전체적으로 MLB 기준보다 좁은 편이다. 타자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WBC는 MLB 심판들이 구심을 맡는다. 당연히 MLB의 기준이 곧 WBC의 기준이다. 실제로 한국은 1~2차전 내내 구심의 볼판정에 고전했다. 타자 입장에서 볼이라고 판단한 높은 코스의 공에 구심의 팔이 올라간 경우가 잦았다. 이때마다 타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용규 역시 개막을 앞두고 “연습경기에서 공 두 개 정도 빠진 것 같아 흘려보냈는데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 당황한 적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S존은 단순히 WBC의 성적뿐만 아니라 KBO리그의 질적 저하를 낳았다. KBO리그는 수년간 극심한 타고투저를 겪고 있다. 지난해 3할타자만 40명이었다. 그 원인으로 ‘좁은 S존’ ‘타격 기술의 발전’, ‘유망주의 불펜 기용’, ‘반발력이 높은 공인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꼽긴 힘들지만 기형적인 S존이 타고투저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좁은 존 탓에 타자들이 신경써야할 코스 역시 좁아지며 한결 편해졌다. 반대로 투수들은 바늘구멍 같은 곳에 공을 던지기 위해 신경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면 한가운데로 몰리는 공도 많아진다. 타자들은 이를 공략해 장타를 만들어내고 투수들의 성적은 곤두박질친다. ‘핵심 불펜’ 투수나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유망주들이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됐다. 일종의 ‘S존 나비효과’인 셈이다. 염경엽 SK 단장도 지난해 KBO 윈터미팅에서 "스트라이크존이 예전보다 좁아지면서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트라이크존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WBC에 나선 한국 타자들은 좁은 S존에 익숙하다. 때문에 KBO기준에 벗어난 공이 들어오면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타고’가 허상이었던 것. 반대로 투수들도 습관처럼 KBO리그의 S존에 맞춰 투구를 했고, 이는 WBC 기준대로면 ‘몰린 공’이라 타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투저’는 어느 정도 맞았다. 1~2차전에서 투타 나눌 것 없이 모두가 고전한 이유 중 하나다.
▲ 10년의 과제. 전임 감독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며 대표팀과 연을 맺었다. 당시 김 감독은 우승을 이끌며 ‘국가대표 감독 데뷔’를 멋지게 해냈다. 2006 WBC 초대 대회 사령탑도 그의 몫이었다. 독특한 대회 규정 탓에 4강에 그쳤지만 놀라운 지도력으로 ‘국민 감독’에 등극했다.
김인식 감독은 2009년 대회에도 감독직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전년도 우승팀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는 내부 규정이 있었다. 2007~2008시즌 2연패를 달성한 김성근 당시 SK 감독의 차례였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고, 또다시 김인식 감독이 구원등판했다. 김 감독은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의 금자탑까지 쌓은 뒤 KBO에 전임 감독을 요청했다. ‘김인식’이기에 가능한 요청이었다.
이번 WBC는 어쩌면 전임 감독의 첫 걸음일 수 있었다. KBO는 지난해 9월 전임 감독제를 비중 있게 논의했다. 그러나 결국 공은 김인식 감독에게 다시 넘어갔다. 그는 ‘독이 든 성배’를 너무도 많이, 자주 마셨다. 엄청난 부담 탓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리인 탓에 김인식 감독의 건강에 대한 우려는 언제나 화두였다.
분명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임 감독제를 도입해야 한다. 옆나라 일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WBC 1~2회 대회 우승팀 일본은 2013년 3회 대회에서 4강에 머물렀다. 일본은 그 즉시 전임 감독제를 도입하고, 고쿠보 히로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고쿠보 감독은 비록 첫 대회였던 프리미어12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착실히 준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 2021년 WBC를 목표로 세대교체를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전임감독의 확고한 미래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 야구의 2020년 올림픽, 2021년 WBC의 비전을 설명할 이가 있을까? 전임 감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i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