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투혼이었다.
IBK기업은행은 28일 화성 실내체육관서 열린 흥국생명과 '2016-2017 NH농협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따냈다. '주포' 리쉘이 42점으로 활약했지만 11점을 올린 김희진도 빛났다.
정규시즌 2위 IBK기업은행은 KGC인삼공사와 플레이오프(PO)를 거치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그러면서 지난 3월 18일부터 26일까지 이틀에 한 번씩 경기를 펼쳤다. 9일간 5경기. 풀세트 접전도 두 차례 있었고, 3-0 '셧아웃'은 없었다.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난 2차전에서 탈이 났다. 센터 공격수 김희진은 이날 경기 2세트부터 라이트로 위치를 바꿨다. 이 변칙은 주효했고 김희진은 15득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자마자 탈진해 쓰러졌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돼 혈액검사와 CT촬영 등 검사를 했지만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시적인 어지럼증. 체력 고갈이 원인이었다.
3차전에서도 관건은 김희진의 몸 상태였다. 경기 전 만난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김)희진이 몸 상태는 괜찮다. 지난 경기 탈진은 체력 소진에 긴장이 겹쳐 발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감독은 "경기가 없던 전날(27일) 서브와 서브 리시브 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정도만 했다. 이틀에 한 번 경기했는데 지치지 않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최소한의 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나선 김희진의 컨디션은 이정철 감독의 자신감과 달랐다. 김희진은 1세트 무득점에 그쳤다. 애초에 토스 자체가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김희진의 1세트 공격 점유율은 8.82%. 디그도 한 차례에 불과했다.
2세트부터 달라졌다. 김희진은 2세트, 김사니의 배급을 받으며 3득점을 올렸다. 김희진의 3득점은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1세트 공격 점유율 리쉘과 박정아에 편중됐던 공격이 어느 정도는 그에게 분산된 것. 상대 수비에게 압박을 가하기 쉬워졌다. 김희진은 3세트에도 4득점을 올리며 살아난 모습을 보였다.
김희진의 '클러치 능력'은 4세트에서 빛났다. 김희진은 22-16으로 앞선 상황에서 이재영의 백어택을 단독 블로킹하며 점수 차를 벌렸다. 4세트 4득점을 올렸는데 이재영의 공격을 막은 걸 제외한 나머지 3득점은 모두 동점 내지 한 점 차 상황에서 나왔다.
김희진은 이날 경기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IBK기업은행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코트를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 제한된 체력을 꼭 필요한 곳에만 효율적으로 쓰는 모습이었다.
김희진이 코트에서 밝은 미소를 보인 건 5세트, 15-8로 승리를 확정지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김희진의 투혼은 IBK기업은행을 깨웠다. /ing@osen.co.kr
[사진] 화성=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