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감독의 몸을 건드린다? 우리나라 정서상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SK 덕아웃에서 벌어졌다. SK 거포 정의윤(31)이 트레이 힐만(53) 감독의 가슴을 친 것이다.
정의윤은 지난 15일 대전 한화전에서 8회초 대타로 교체 출장했다. 한화 우완 윤규진의 초구 바깥쪽 높게 들어온 142km짜리 직구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10m, 시즌 2호 홈런. 지난 2일 문학 kt전 마수걸이 홈런 이후 10경기 만에 모처럼 터진 대포 한 방이었다.
이미 승부가 SK 쪽으로 기운 뒤 터진 홈런이라 결정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홈런을 치고 3루 SK 덕아웃으로 들어온 정의윤이 돌발(?) 행동을 했다. 자신을 맞이하는 힐만 감독의 가슴을 오른손 주먹으로 툭 때린 것이다. 힐만 감독은 미소를 띄우며 정의윤의 엉덩이를 쳐줬고, 덕아웃은 웃음바다가 됐다.

힐만 감독은 최근 정의윤에게 "네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 네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날 때려라"는 특별주문을 했다. 정의윤은 시즌 초반 타격 슬럼프에 빠지며 4번타자 자리를 내놓았다. 다소 의기소침해진 정의윤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 힐만 감독이 특별히 '폭력'을 허락한 것이다.
SK 관계자는 "정의윤도 처음엔 '어떻게 감독을 때리나'며 쭈뼛쭈뼛했다. 그러다 '긍정적인 기운을 받고 싶을 때 한 번 때리겠습니다'라고 했다"며 "홈런을 치고 처음으로 감독님을 때렸다. 앞으로도 제법 할 것 같다.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고 귀띔했다.
힐만 감독은 지난 14일 한화전에서도 5회 견제사를 당한 정의윤이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오히려 따뜻하게 다독여줬다. 힐만 감독은 "내가 낸 사인에 움직이다 아웃된 것이다. 정의윤이 부담을 가질 필요없다. 단지 카운트를 세는 방법, 스타트 타이밍에 대해 간단히 조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힐만 감독은 "정의윤은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가 아니다. 한 번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뭐라 하면 더 큰 압박을 받아 뛰지 못할 것이다"며 "정의윤에게 올 시즌이 끝나면 도루 숫자가 10개 이상일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이야기했다. 정의윤은 지난 2013~2015년 3년 연속 도루 5개를 한 게 개인 최다기록.
감히(?) 감독의 가슴을 친 정의윤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장난으로 한 것이다"며 겸연쩍어 한 뒤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거리감 없이 편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그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달라진 SK 덕아웃 분위기를 힐만 감독이 만들고 있다. 개막 6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초조할 법도 했지만 큰 그림을 그렸다. 힐만 감독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항상 평정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선수들을 대하는 것이다. 너무 업 되어서도 안 되지만 처져 있어도 안 된다. 싫은 내색하지 않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한다. 그게 감독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힐만 감독은 조금은 어눌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매일 좋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선수가 감독 가슴을 때릴 정도로 SK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확 달라졌다. /waw@osen.co.kr
[사진] 정의윤-힐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