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의 유행 중 하나인 수비 시프트를 두고 김현수(29·볼티모어)와 토론토가 장군과 멍군을 연달아 불렀다.
김현수는 16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토론토와의 경기에 선발 7번 좌익수로 출전했다. 2회 첫 타석에서 재치 있는 번트 안타를 만들며 3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갔다. 그러나 멀티히트가 될 수 있었던 장면에서는 토론토 수비진이 반격하며 아쉽게 1안타에 그쳤다.
좌타자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포수 시점 기준으로 우측 방면의 타구가 많은데, 지난해 김현수도 큰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도 안타 방향은 대부분 우측 방면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데이터 탓에 토론토는 이날 김현수 타석 때 전체적으로 우측으로 치우쳤다.

물론 크리스 데이비스나 또 다른 좌타 플래툰인 세스 스미스와 같은 극단적인 시프트는 아니었다. 김현수의 배트 컨트롤도 그들의 분석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2루수가 정상 위치보다 1루·외야 쪽으로 치우쳐 내야와 외야 잔디 경계에 섰다. 유격수는 2루 베이스를 넘지는 않았으나 2루 쪽으로 상당 부분 옮겨갔다. 3루수는 유격수가 이동한 만큼 우측으로 이동했다.
김현수는 2회 첫 타석에서 이를 역이용했다. 초구를 지켜본 김현수는 3루 쪽의 번트 수비 대처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2구째 3루쪽으로 침착하게 번트를 댔다. 뒤늦게 3루수 코글란이 대시했으나 이미 전력질주한 김현수는 1루에 거의 도달한 상황으로 내야안타가 됐다. 공식적인 기록 상으로는 지난해 1개에 이어 통산 두 번째 번트 안타였다.
보통 이런 시프트에서도 MLB의 좌타자들은 자신의 타격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시프트를 뚫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타격대로 강한 타구를 날리는 것”이라는 파쇄법도 있다. 그러나 김현수는 출루를 위해 욕심을 내지 않고 번트 안타를 만들었다. 기습번트 경험이 많지 않은 김현수라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토론토 수비진의 뒷통수를 친 셈이 됐다.

하지만 4회에는 통계와 숫자에 기반한 토론토가 김현수의 멀티히트를 막아냈다. 유격수와 2루수의 수비 위치는 동일했고, 대신 3루수가 약간 전진해 2회와 같은 번트 상황을 대비했다. 김현수는 초구 체인지업이 다소 한가운데 몰리자 지체 없이 방망이를 돌려 우전안타성 타구를 만들었다. 타구속도는 104마일(167.37㎞)로 강한 편이었다. 이 정도 속도에 그 정도 코스라면 능히 우전안타였다.
그럼에도 이미 1루쪽으로 상당 부분 움직인데다 외야의 경계선까지 나가 선택지가 넓었던 2루수 고인스가 마지막 순간 넘어지며 김현수의 강한 타구를 막아낸 끝에 1루로 송구해 안타 하나가 지워졌다. 정상 위치라면 잡기 어려웠거나, 잡더라도 넘어진 상황에서 1루 송구가 쉽지 않았지만 시프트 덕에 비교적 무난한 아웃카운트를 올릴 수 있었다. 장군멍군이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토론토(캐나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