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좌완 에이스 라이언 피어밴드(32)의 시즌 초 기세가 매섭다. 세 경기 등판 3승, 평균자책점 0.36. 지난 시즌 도중 넥센에서 버려졌다는 걸 믿기 힘든 쾌투다.
피어밴드는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전에 선발등판, 9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kt는 10회 터진 조니 모넬의 희생플라이로 LG에 1-0 승리를 거뒀다. 피어밴드의 시즌 3승.
이날 경기는 피어밴드의 영리함이 빛났다. 피어밴드는 직전 등판이던 9일 삼성전서 너클볼의 위력을 앞세워 완봉승을 거뒀다. 당시 그는 전체 113구 중 33구를 너클볼로 던졌다. 비율은 29.2%. 속구(36구)와 서클체인지업(31구)에 필적할 만했다.

자연히 '적장' 양상문 LG 감독도 그의 너클볼을 경계했다. 양 감독은 "흔히 알고 있는 너클볼보다 속도가 빠르다. 일종의 변형인데, 우리나라 타자들에게 생소해서 어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양 감독은 "타자들이 출루한다면 적극적으로 뛰게 할 생각이다. 견제할 때 너클볼 그립으로는 힘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피어밴드는 경기 전 이 사실을 접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번역해 '양상문 감독이 너클볼을 노리고 있다'고 인식했다. 피어밴드는 "기사를 번역해서 봤는데 내 너클볼을 노린다더라. 그래서 너클볼의 비중을 확 줄였다"라고 밝혔다.
실제 피어밴드의 이날 경기 전체 96구 중 너클볼은 18구에 불과했다. 비중은 19%. 직전 등판과 현격한 차이다. 피어밴드는 "속구나 체인지업에도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피어밴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너클볼을 '보여주는 공' 정도로만 사용했다. 주 무기로 사용한 건 올 시즌이 처음. 그러나 너클볼이라는 레퍼토리 하나가 추가된 것만으로도 위용이 발휘된다. 피어밴드는 "지난해에는 시즌 도중 유니폼을 갈아입었기 때문에 포수들과 호흡 맞출 시간이 적었다"라며 "올 시즌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포수들과 훈련을 했기 때문에 너클볼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장성우 역시 "스프링캠프 때부터 너클볼을 받았기 때문에 수비할 때 어려운 건 전혀 없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피어밴드의 너클볼은 '아버지의 작품'이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야구를 좋아하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피어밴드에게 너클볼 그립을 알려줬다. 그저 신기해서 따라해봤던 피어밴드는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남들은 쉽게 익히기 힘들다던 너클볼. 그는 그렇게 쉽게 주 무기를 얻게 됐다.
피어밴드가 올 시즌 달라진 점은 너클볼 구사 빈도 말고 하나 더 있다. 바로 제구력. 올 시즌 피어밴드는 몸에 맞는 공 하나를 내줬을 뿐 볼넷 허용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10월 5일 한화전서 볼넷 허용 이후 올 시즌까지 18⅔이닝 무볼넷 행진. 피어밴드는 이날 경기도 무볼넷으로 마치며 27⅔이닝으로 늘렸다. KBO리그 연속 이닝 무볼넷 최고 기록은 지난해 신재영이 세운 30⅔이닝.
피어밴드 역시 "올 시즌 볼넷이 없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뒤 "스트라이크존 변화와는 상관 없다. 3구 안에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 승부를 펼친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볼넷을 내줄 바에는 안타를 맞는 게 낫다"라며 자신의 투구 철학까지 밝혔다.
너클볼과 제구력의 안정. 이 두 가지 무기로 피어밴드는 시즌 초 KBO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ing@osen.co.kr
[사진]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