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1·미네소타)는 2017년 연이은 시련을 겪고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직후 충격적인 방출대기(DFA·양도선수지명) 처분을 받았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의 맹활약으로 25인 재진입이 확실시됐지만 미네소타는 ‘로스터 전략’을 이유로 박병호를 외면했다.
마이너리그 시즌 개막 후 4경기에서 2루타 3방을 포함해 타율 3할7푼5리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불의의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전반적으로 안 풀리는 한 해다. KBO 리그 시절 2군 생활이 길었던 박병호는 노력은 반드시 성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수다. 그러나 올해는 노력이 꼭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굳게 믿고 있었던 철학이 흔들릴 때, 정신적 피로감은 배가된다.
오승환(35·세인트루이스)은 “될 듯 될 듯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신적인 충격이 극심할 것이다. 정말 힘들 것이다. 많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후배를 안쓰러워한다. 항상 밝은 표정에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인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박병호도 이례적으로 답답한 상황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18일 재활을 위해 미 플로리다주로 떠나는 박병호는 “준비는 됐는데 오히려 몸이 안 따라주니 답답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계속되는 박병호 외면은 미네소타 구단 내 정치적 지형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한 관계자는 “전임 테리 라이언 단장 시절 기대를 많이 받았던 선수들이 방출되거나 마이너리그로 상당수 내려왔다. 라이언 단장 시절 스카우트한 어린 유망주들도 싱글A나 더블A에서 입지가 줄어든 경우가 있다”며 익명을 요구하며 박병호를 포함한 몇몇 선수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활약을 펼친다고 해도 올해 안에 메이저리그에 다시 올라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미네소타의 결정권자 중 박병호의 우군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폴 몰리터 감독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로체스터 현장은 이런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말을 아끼긴 했지만 박병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MLB)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회를 찾기 위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다. 트레이드 등 다른 방법도 있지만 아직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어쩌면 KBO 리그로 돌아간다면 훨씬 더 편안한 환경에서 뛸 수 있다. 포스팅 시스템으로 MLB에 가 FA 자격 취득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대호(롯데)도 30대 중반에 거액 계약을 성사시켰다. 명예와 부가 모두 따라올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박병호는 이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병호는 “이런 상황이 됐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며 단호한 어조로 “한국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를 정면돌파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계약을 맺은 4년 동안 MLB에 도전하겠다는 게 박병호의 속내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배수진이기도 하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의 성과는 그런 박병호의 의지를 아래에서 받쳐주고 있다. 터널에서 벗어나 빛을 봤다는 것이 박병호의 생각이고,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박병호는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은 작년에 부족했던 부분을 연습을 하면서 과정이 어떨지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은 괜찮았다. 마이너리그 개막 후에도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다. 타이밍도 괜찮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병호는 아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로체스터(미 뉴욕주)=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