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커피 한잔①] ‘도봉순’ 작가 “날 내려놓고 썼다..욕먹을 각오도”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7.04.20 09: 00

백미경 작가, ‘사랑하는 은동아’보다는 ‘힘쎈여자 도봉순’에 좀 더 가까운 작가인 듯하다. 그 말인즉슨 ‘사랑하는 은동아’의 느낌을 생각하고 만났는데 막상 만나보니 예상한 것과 달리 상당히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쳤다는 얘기다.
백미경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랑하는 은동아’ 방송이 끝난 후 드라마제작사, 드라마 PD들을 만났는데 하나같이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사랑하는 은동아’ 본인이 쓴 거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20년간 한 여자만을 사랑한 톱배우의 순수한 사랑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그린 서정멜로 드라마인데 직접 만나본 백미경 작가의 에너지는 ‘서정적’보다는 ‘강렬’했다.

백미경 작가의 강렬한 에너지로 탄생한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B급의 재미와 유쾌함으로 시청자들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1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JTBC 역대 드라마 중 최고시청률을 남겼다.
그간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시청률이 아쉬웠던 JTBC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주역 한 명이었다.
- ‘힘쎈여자 도봉순’이 시청률 10%에 육박할 정도로 잘 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지?
▲ 이렇게까지 잘 될 줄 몰랐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장르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낯선 드라마이다 보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배우들이 워낙 좋아서 배우들이 살린 드라마라는 평가가 있는데 각오를 하고 썼다.
드라마 시작할 때 목표가 작가가 보이는 드라마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JTBC에서 잘해놓고 가자는 생각에 시청률 높은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대본을 썼다. A를 보고 싶은 시청자들은 A를 보고 B를 보고 싶은 사람은 B를 보고 하는 등 많은 시청자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작가가 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를 쓰는 게 JTBC에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이 보이는 드라마를 쓰려고 했고 배우들이 안 보였으면 더 발악했을 거다. 그런데 운이 좋게 좋은 배우들이 출연해줬다.
- ‘힘쎈여자 도봉순’이 JTBC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는데 소감이 어떤지?
▲ 영광이다. 일반 채널에서 원 오브 뎀이 아니라 황무지에 꽃을 피운 기분이다. 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대본을 썼지만 드라마는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협업으로 탄생할 수 있다. 이형민 감독, 배우들, 스태프들 덕에 이 드라마가 잘 될 수 있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 ‘사랑하는 은동아’를 생각했을 때 ‘힘쎈여자 도봉순’과 전혀 매치가 안 된다.
▲ ‘사랑하는 은동아’가 끝난 후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제작사, PD들이 하나같이 너무 충격을 받더라. ‘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 지 ‘은동아 본인이 쓴 거 맞냐’고 하더라. 내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은동아’가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사랑하는 은동아’에 더 가깝다.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갈 길이고 더 마음이 간다. 사람들이 많이 안 봐서 안타까운 드라마다.
- ‘힘쎈여자 도봉순’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은 작품인지?
▲ 앞으로 작품 쓸 때 갈등하게 만들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작품 사이에서 선택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시청자를 행복하게 하는 작품을 쓰는 게 작가의 소명이다.
- 반응이 너무 좋아서 대본 쓸 때도 즐거웠을 것 같은데?
▲ 박보영 파워가 있어서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박보영이 이 대본을 선택했을 때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크게 부담이 됐다. 거기다 너무 좋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해 모두가 즐거운 한마당 놀이를 해주고 싶어서 모든 캐릭터를 다 끌고 가는 게 힘들었다. 주인공만 끌고 갈 수 없는 드라마였다.
특히 드라마 자체가 장르가 세 개인데 스릴러를 쓰면서 힘들었다. 쫄깃하게 쓰고 싶은데 그러면 8회쯤 연쇄납치범이 잡히더라. 그렇게 되면 봉순이가 할 일이 없어지고 그래서 경찰을 무능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여자 히어로가 세상을 바꾸는 걸 쓰고 싶어서 대의를 위해 소의를 버려야 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 ‘힘쎈여자 도봉순’ 같은 히어로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집필하게 된 건지?
▲ 남들이 안 쓴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작가들이 여성 히어로는 한 번쯤 생각했을 거다. 수동적인 여성, 남자에게 사랑받는 공식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이 안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고 그런 면에 있어서 남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을 ‘힘쎈여자 도봉순’을 통해 할 수 있었다.
나는 ‘건강한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그런 캐릭터를 드라마에 넣는다. 기회만 주면 실험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용기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험도 해보고 욕을 듣더라도 해야 한다. ‘병맛 코미디’라는 게 엘리트 집단이 폄하하는 장르인데 작가로서 욕먹기 쉬운 드라마지만 나는 더 ‘병맛’을 쓰고 싶고 ‘병맛이 이런 거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애정을 가지고 신경 써서 쓴 점은?
▲ 애정을 가지고 쓴 건 캐릭터다. 캐릭터 구현에 애정을 쏟았다. 민혁 캐릭터는 다른 남자와 다르게 멋있어야 했다. 전형적인 멋있는 남자로만 보이면 안 되지만 멋있음을 유지하면서 허당의 면모를 집어넣었다. 도봉순을 제일 신경 쓴 게 능동적이고 사랑스럽고 풋풋함이 있어야 했다. 걸크러시지만 사랑에 서툰, 그래서 짝사랑을 오래 했다는 설정을 넣었다.
봉순이가 힘쓰는 장면도 신경 썼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대본을 쓰는데 다른 작품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하는 은동아’도 빨리 썼는데 ‘힘쎈여자 도봉순’은 오래 대본 썼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서 수정을 많이 했다.
- 드라마 작가 데뷔를 늦게 했는데?
▲ 30대 때 영화를 했었는데 영화공모전에서 당선됐는데 내가 쓴 시나리오를 빼앗기고 그만두고 떠났다. 대구에서 10년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편하게 살았는데 결국 돌아왔다. 내가 쓰고자 하는 욕망,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하루라도 젊을 때 풀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좋은 대본을 써야 한다. 좋은 작가,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아직은 멀었다. 더 노력해야겠다. /kangsj@osen.co.kr
[사진] 드라마하우스, JS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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