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블랙리스트 없겠지?"..'시카고'가 담아낸 씁쓸한 현실
OSEN 박진영 기자
발행 2017.04.22 11: 07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대사 하나하나 의미심장하다. 특히 빼앗긴 조국과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는 1930년 장면은 시끄러웠던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해 깊은 여운을 안겼다. 
지난 21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5회에서는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분)의 정체가 밝혀진 가운데 1930년대 경성의 환영을 통해 한세주(유아인 분)와 전설(임수정 분), 유진오가 전생부터 이어져온 관계임이 드러났다.
원고 마감일이 다가와도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 혼란에 빠진 한세주는 유령작가의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1930년 서휘영(유아인 분)이 남긴 말은 한세주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통에 이제는 3류 연애소설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서휘영은 절망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조국은 빼앗겼지만 나에게서 문장을 뺏을 수는 없어. 글을 쓸 수 없다면 난 유령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그였다. 그리고 "해방된 조선에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미친듯이 쓸거야"라고 다짐했다. 
그 때 들려오는 한 마디. "해방된 조선에선 블랙리스트 같은 건 없겠지?" 이에 서휘영이 말한다. "없으니까 해방이지." 빼앗긴 조국에도 봄은 찾아오기에, 언젠가 해방된 조선에서 글을 마음껏 쓰겠다고 말하는 서휘영의 말은 한없이 희망적이다. 블랙리스트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그의 목소리에 강한 힘이 가득한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이 말들은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씁쓸함 그 자체다. 무려 8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대한민국이다. 분명 해방이 되었지만, 진정한 자유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은 것. 앞서 방송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이재한(조진웅 분)은 현재를 살고 있는 박해영(이제훈 분)에게 "달라졌겠죠?"라고 물었는데, 이 역시도 시대의 씁쓸함을 반영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다. 
작가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마다 가지게 되는 고민을 촘촘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 전생과 현생의 인연이라는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탄탄한 필력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는 진수완 작가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시카고 타자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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