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O 리그의 최고 화두는 벤치클리어링이었다. 지난 21일 대전구장에서 한화와 삼성 선수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4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KBO 리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선·후배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KBO 리그에서 벤치클리어링은 말 그대로 기 싸움 측면이 강하다. 물불 안 가리고 부딪히는 메이저리그(MLB)와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마이너리그를 포함해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감독 생활을 한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봤을까.
힐만 감독은 “하이라이트로 그 부분만 봤다. 전후 사정은 잘 알지 못한다”라면서 “일단 경기의 일부다. 나도 MLB는 물론 마이너리그에서도 많은 벤치클리어링을 해봤다. 경기가 과열되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사실 미국도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힐만 감독이 말하는 MLB의 벤치클리어링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 이유는 KBO보다 훨씬 많아
MLB에서도 불문율이 존재한다.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이라면 서로 조심하면 된다. 하지만 모호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 힐만 감독의 이야기다. 힐만 감독은 “같은 플레이라도 점수차가 얼마인지, 몇 회인지에 따라 해석이 다 다르다”면서 “일반적으로 번트나 도루는 물론 수비수를 이동시킬 것인지, 그리고 3B 상황에서 홈런 스윙을 할 것인지도 다 벤치클리어링의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KBO 리그에서는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불문율은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수비 시프트나 3B 상황에서의 홈런 스윙까지 크게 문제 삼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MLB는 이 또한 민감하게 본다는 것이 힐만 감독의 설명이다.
최근 LA 다저스와 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는 돈 매팅리 마이애미 감독이 “3B 상황에서 풀스윙을 했다”는 이유로 빈볼을 지시해 논란이 됐다. 우리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그 또한 벤치클리어링의 이유가 된다. 힐만 감독은 이 상황에 대해 “7회 5점차 리드고 다저스는 최고 마무리 투수인 잰슨이 마운드에 있었다. 나도 그 상황은 다저스가 너무 했던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심지어 타격 자세 하나도 문제가 될 때가 있다. 힐만 감독은 “박석민(NC)이나 우리 팀의 김성현 같은 선수들은 헛스윙을 한 뒤 제자리에서 빙글 돈다. MLB에서는 그러면 바로 갈비뼈를 향해 공을 던진다. 상대를 모욕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배트플립에 대한 해석 차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감독이 직접 지시, 코치는 중재하는 사람
힐만 감독도 감독과 벤치코치 시절 벤치클리어링에 직접 가담한 적이 적지 않다. 그 유명한 2013년 다저스와 애리조나의 잭 그레인키 ‘헤드샷’ 빈볼 시비도 경험했다. 힐만 감독은 “적극적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팀의 원칙이다. 다만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고의든, 그렇지 않든 머리를 가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코치들이 중재자 몫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레인키 빈볼 벤치클리어링은 당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까지 가세했다는 점에서 그 또한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이번 21일 벤치클리어링 역시 삼성의 코치 두 명이 징계를 받았다. 힐만 감독은 “물론 화가 날 때도 있다. 중재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가는데 말로는 해결이 안 되는 때가 있기도 하다”라면서도 “어쨌든 코치가 해야 할 일은 선수들을 떼어놓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KBO 리그는 감독이 직접 빈볼을 지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감독의 의중’을 미리 읽은 코치나 베테랑 선수들이 지시한다. 하지만 MLB는 보통 감독이 직접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힐만 감독의 설명이다. 힐만 감독은 “미국은 거의 감독의 지시다. 때로는 베테랑 선수들에게 ‘한 때 때릴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코칭스태프는 뒷수습을 해야 하는 몫도 있다. 선수들은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앙금이 많이 남아 다음 대결까지 이슈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다르다. 힐만 감독은 “만약 불문율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다음 날 상대 감독을 찾아가 신사적인 대화를 나누곤 했다.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중간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KBO 리그 코칭스태프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