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이저리그(MLB)를 지배하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홈런’이다. 지난해에 비해 적지 않게 늘어난 수치가 마운드를 괴롭히고 있다.
마치 스테로이드 시대가 연상되는 홈런 페이스다. 역대 가장 많은 홈런 폭죽이 터진 시즌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흔히 2000년을 떠올린다. 2000년 4월에는 935개의 홈런이 나왔고, 5월에는 1069개의 홈런이 터져 나왔다. 시즌 개막부터 5월까지만 2004개의 아치가 MLB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그런데 그에 필적할 만한 곡선이 올해 나타나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에 따르면 올 시즌 MLB 4월 일정에서는 총 863개의 홈런이 나온 것에 이어, 5월에도 1060개의 홈런이 터진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월간 순위를 봤을 때 4·5월 모두 2000년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이로써 올해 4·5월 홈런 합계는 1923개가 됐는데 이는 2000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특히 올해 5월은 지난해 8월 나온 월간 홈런 2위 기록(1053개)을 밀어내는 한 달이었다. 오직 2000년 5월(1069개)만이 올해 5월보다 더 많은 홈런이 나온 한 달이었다. 5월로만 따져 봤을 때도 2000년과 1999년(980개)의 사이에 끼었다. 홈런이 많이 나왔다던 지난해 5월에도 965개로 올해만 못했다. 홈런 페이스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1999년과 2000년은 이른바 ‘스테로이드’의 시대였다. 많은 스타들이 도핑 테스트의 허점을 이용해 약물로 근육을 키웠다. 집중력을 예민하게 하는 각성제는 흔하게 널려 있던 시대였다. 이 사실은 추후 적발돼 팬들의 불신을 키웠다. 지금도 당시 타자들의 성적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 그 당시의 홈런 타자들 중 약물 의혹이 드러난 선수들은 아직도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의 이상 현상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 현지 언론에서도 아직 명확한 분석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단 타격 기술과 선수들의 힘이 전반적으로 상승했고, 투수들의 구속이 빨라지는 만큼 반발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KBO 리그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약물’ 없이도 체계적인 훈련과 트레이닝 기법을 통해 충분히 힘을 키울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약물’을 의심한다. 대개 도핑이 도핑 테스트의 발전을 부른다. 발전된 도핑 테스트를 피하기 위해 또 도핑이 발전한다. 도핑이 먼저 발걸음을 뗀다는 것이다. 현재 시스템에서 잡히지 않는 은밀한 거래를 통해 힘을 증강시킨다는 의혹이다. 이에 MLB 사무국은 올해부터 도핑 테스트의 숫자를 크게 늘려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혹자들은 ‘공인구’를 의심하기도 한다. 도핑이 없다는 가정 하에, 3~4년 전에 비해 현재 선수들의 힘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닐 텐데 홈런 개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조정하면 비거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MLB 측에서는 이러한 의혹을 반박하고 있다. 공인구에 인위적인 조정이 없었다는 일관된 메시지다.
어쨌든 최근 몇 년째 꾸준히 홈런은 늘어나고 있고, 홈런왕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흥미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테로이드 시절만큼 아니지만 올해는 홈런왕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여러 선수들이 일대 혼전을 벌이고 있다. 당장 1일까지 홈런 1위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가 17개의 홈런을 쳤는데 13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리그 전체에 23명이다. 자고 일어나면 순위가 바뀌는 차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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