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윤 보장 17억’ SK 합리적 기조 통했나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2.08 06: 02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정의윤(31·SK)의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FA) 전망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시장에 외야 FA들이 많이 풀릴 예정이었지만, 정의윤은 정의윤 나름대로의 포지션이 있어 보였다. 타격 능력은 괜찮았다. 좌익수와 우익수 수비도 나설 수 있었다. 그냥 지명타자는 아니었다. 
팀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한 정의윤은 2016년 144경기에 모두 나가 타율 3할1푼1리, 27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비록 후반기 부진이 다소 걸리기는 했으나 생애 최고의 성적이었다. FA 자격을 앞두고 2016년 성적을 이어가는 게 관건이었다. 2016년의 경험을 발판 삼아 이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다면 FA 전선도 밝아진다. 만 3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전반기에 부진했던 정의윤은 20일 정도 2군 생활을 경험하는 등 부침이 있었다. 후반기 52경기에서 타율 3할5푼1리, 10홈런, 26타점을 기록하며 반등하기는 했으나 이미지가 많이 깎인 뒤였다. 그렇게 FA 시장에 나온 정의윤은 다소간 불운한 첫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 달 이상 시장 상황을 물색했으나 끝내 7일 오후, 원 소속팀 SK와 4년 총액 29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2016년 성적을 유지했다면, SK가 이 가격에 정의윤을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 총액이 29억 원일 뿐, 옵션 비중이 컸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계약금 5억 원, 연봉 총액 12억 원, 옵션이 12억 원이다. 연봉 총액과 옵션 비중이 같았다. 정의윤의 향후 성적에 따라 이번 계약 규모는 4년 17억 원이 될 수도 있고, 4년 29억 원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선수들은 보장 계약에 사활을 건다. 그만큼 정의윤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변한다.
그나마 이 또한 상향된 조건이었다. SK는 정의윤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시장가 이상의 ‘오버페이’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치밀한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다른 구단들이 정의윤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실제 FA 보강에 나선 팀들은 대체로 SK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경쟁이 붙지 않으니, SK로서는 굳이 많은 금액을 베팅할 이유가 없었다. SK는 냉정하게 움직였다.
주변의 오해와는 달리 정의윤이 협상 과정서 특별히 돈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SK의 첫 제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SK의 첫 제시는 2년 보장 계약이었다. 자연히 총액도 10억 원을 크게 웃돌지 않았다. 정의윤으로서도 쉽게 도장을 찍을 수 없는 제시였다. 총액도 총액이지만 2년 뒤에는 자신의 신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의윤은 2020년 시즌이 끝나도 만 34세다.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었다.
여기에 FA 시장도 예전만 못했다. 우려대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했다. 대어 선수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장받는 반면, 나머지 선수들에 대한 구단들의 시선은 냉정했다. FA 시장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는 정의윤과 같은 준척급 선수들도 시장 상황에 따라 의외로 좋은 조건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공기가 조금 달랐다. 정의윤으로서는 대체적으로 불운한 첫 FA 자격 행사였다.
결국 최근 양자는 계약기간과 옵션 비중을 동시에 높이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SK도 어차피 팀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정의윤을 그대로 방치하기는 어려웠다. 제시액이 높지 않은 대신, 첫 협상부터 정의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하는 데 총력을 다하기도 했다. 4년 계약을 보장받는 동시에, 옵션이 커졌다. 정의윤은 앞으로 4년간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받았다. 첫 제시에 비하면 나름대로의 성과였다.
반대로 SK는 옵션을 걸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옵션이 아주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냥 건강하게 뛴다고 해서 따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정의윤이 옵션을 모두 따낸다면, 그 자체로 4년 29억 원 이상의 선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준이다. SK는 정의윤이 옵션을 다 챙겨가도 그만큼 팀 성적에 도움이 될 테니 전혀 나쁠 것이 없는 꽃놀이패다.
시장 상황을 보면 SK의 합리적 FA 기조가 그대로 이어진 듯 보인다. 실제 민병헌은 롯데와 4년 80억 원의 계약에 합의했다. 모두 보장액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보상금과 보상선수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100억 원 상당의 지출을 했다. 반면 SK는 정의윤을 보장 17억 원에 눌러 앉혔다.
물론 민병헌은 중견수를 볼 수 있고, 타격 성적도 정의윤보다 더 꾸준히 좋았다. 5년 연속 3할을, 그것도 잠실에서 쳤다. 정의윤보다 더 가치가 있는 선수였고, 이는 시장에서의 희비로 엇갈렸다. 지금 시점에서 롯데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4년 뒤 성과가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정의윤보다 3배 이상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의윤은 불운했지만, SK로서는 이번 협상이 비교적 만족스럽게 끝났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한편으로 정의윤의 계약은, 남은 FA 선수들의 협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해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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