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즐겁게 하는 것과 멋부리며 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현대캐피탈은 9일 한국전력전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하며 5연승을 질주했다. 최근 5연승으로 상승세였던 한국전력도 현대캐피탈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승점 48점으로 2위 삼성화재와 격차를 5점차로 벌린 현대캐피탈은 본격적인 1위 독주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웃지 않았다. 공식 인터뷰에서도 무거운 표정을 풀지 못했다. 셧아웃으로 쉽게 끝낼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마쳤기 때문이었다. 1~2세트를 여유 있게 잡은 현대캐피탈은 3세트에도 20-14로 앞서며 셧아웃을 앞뒀지만 여기서 갑자기 흔들렸다.
공수에서 느슨한 플레이로 범실을 범하며 달아나지 못한 사이 펠리페를 앞세운 한국전력이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20-14에서 22-25로 역전당하며 3세트를 내줬다. 최태웅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렀지만 선수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몸 컨디션이 한국전력보다 아주 좋았다. 3세트 중반까지 잘 끌고갔지만, 마지막에 집중력이 흔들렸다. 체력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컸다. 앞으로 3세트 같은 경기를 해선 안 된다. 선수들이 조금 더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작전타임 때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서도 최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느꼈으면 했다. 밝게, 즐겁게 하는 것과 멋부리면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선수들이 멋부리는 모습이 보였다. 프로 선수라면 프로답게 경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기본을 강조했다.
3세트 막판 흔들렸던 세터 노재욱도 반성했다. 그는 "쉽게 갈 수 있었던 것을 어렵게 했다. 안일한 플레이를 했다. 공격수들을 믿고 올렸어야 했는데 맞지 않았고, 범실이 나오면서 당황했다"며 "난 아직 멀었다. 내가 버티지 못해 팀과 동료들이 힘들었다"고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외국인선수 안드레아스도 침묵의 작전타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배구를 하며 이런 경우가 가끔 있었다. 남자 스포츠에선 가끔 무언의 메시지로 에너지를 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3세트 역전 후 4세트를 잡고 승점 3점을 따냈으니 침묵의 작전타임은 성공했다.
최 감독은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여유가 있다고 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마추어 같은 생각이다. 선수들에게도 이 부분을 계속해서 이야기하지만,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다. 다시 선수들과 대화를 통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
[사진] 천안=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