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 힐만 SK 감독의 시즌 전 고민 중 하나는 리드오프였다. 내심 주전으로 생각했던 노수광(28), 전지훈련에서 좋은 페이스를 선보였던 베테랑 김강민(36)의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반대로 외야 백업 한 자리를 놓고 생존경쟁을 벌이던 정진기(26)가 치고 올라왔다. 시범경기에서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였다. 개막이 코앞이었다. 일단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써야 했다. 개막전 선발 리드오프 및 중견수는 정진기였다. 하지만 정진기도 홈런 한 방을 제외하면 공격과 수비에서 아주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자 힐만 감독은 27일 인천 kt전을 앞두고 리드오프를 바꿨다. 롯데와의 개막 2연전에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던 노수광이 리드오프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정진기가 빠졌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이날 선발인 kt 사이드암 고영표를 맞이해 선발 우익수로 들어갔다. 타순은 2번이었다. 두 선수가 테이블세터에 나란히 포진한 것이다.

경쟁자끼리 나란히 붙어서 그럴까. 두 선수의 시너지 효과가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번 타자로 출전한 노수광은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 정진기도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나란히 맹타를 휘둘렀다. 테이블세터의 타격과 출루에 불이 붙자 SK의 득점력도 자연히 살아났다. SK는 이날 8-5로 이기고 개막 후 3연승을 내달렸다.
1회부터 두 선수가 끌고 밀었다. 선두 노수광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그러자 정진기가 우전안타로 뒤를 받쳤다. 두 선수가 만든 기회는 우여곡절 끝에 2사 후 김동엽의 2타점 적시타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2회 나란히(?) 삼진에 그친 두 선수는 4회 다시 연이어 안타를 때렸다. 4회 무사 1,3루에서 노수광이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3루타를 날렸다. 최항과 이재원이 모두 홈을 밟았다. 그러자 정진기는 상대 전진수비를 뚫는 중전안타로 노수광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1회에 밥상을 차렸던 두 선수가 이번에는 해결사 몫까지 한 것이다.
두 선수의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노수광이 좀 더 빠르고 교타자 성격이 있다면, 정진기는 좀 더 묵직한 중·장거리 스타일이다. 그래도 공격은 물론 발 빠르고 수비도 평균 이상인 선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노수광은 전형적인 리드오프 스타일이고, 정진기는 리드오프는 물론 리그가 선호하는 강한 2번으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이날 대성공을 거둔 전략은 앞으로도 사이드암, 혹은 우완 선발일 때 다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굳이 두 선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는 이분법은 필요 없다. 어차피 두 선수는 장기적으로 SK의 외야에서 한 자리씩을 차지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이날 동반 맹활약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캠프에서 함께 훈련하고 있는 노수광(왼쪽)-정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