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답지 않고 공수에서 당차다.”
올해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에 유일하게 참가했던 신인 내야수 한동희(19)에 대해 현장의 관게자들에게 묻자 가장 많이 언급했던 얘기다. 신인답지 않은 당찬 스윙과 배트 스피드와 타격 기술, 그리고 기존 1군 선수들보다 안정감 있는 수비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모습에 롯데 조원우 감독은 한동희에게 시범경기부터 꾸준히 기회를 줬고 한동희 역시 당찬 모습으로 개막전 3루수 자리까지 꿰찼다. 첫 프로 무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동희는 공수에서 프로 적응의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듯 했다.

지난 28일 잠실 두산전 역시 한동희가 1군의 레귤러 멤버로 입지를 굳혀가고 벤치의 신뢰를 얻어가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개막 이후 줄곧 7번을 맡은 타순도 이날은 중심 타선 뒤를 받치는 6번 타자로 승격했다.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1-0으로 선취점을 냈던 1회초, 1사 만루의 추가점 기회가 한동희에게 마련됐다.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이 좋은 두산 선발 유희관이었다.
신인들에게는 쉽게 때려낼 수 없는 공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동희는 초구 볼을 지켜보고 2구째 헛스윙을 했다. 1B1S의 볼카운트에서 3구째 한동희는 방망이를 냈고 타이밍이 다소 빨랐지만 왼 손을 놓으면서 끝까지 팔로스로우를 해냈다. 배트 끝에 맞은 듯 했지만 공을 끝까지 밀어낸 스윙으로 타구는 외야로 향했고, 중견수 앞에 뚝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로 연결됐다. 추가점을 만들어내는 데뷔 첫 타점이기도 했다. 배트 컨트롤로 만들어낸, 신인의 기술이라고 보기 힘든 타격이기도 했다.
좋은 타격은 수비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한동희가 그동안 호평을 받았고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격보다는 수비의 안정감이 컸다. 1회말 1사 1루 박건우의 3루 선상 숏바운드 타구를 과감하게 전진해서 잡아낸 뒤 1루 선행주자를 잡아냈다. 타구 판단과 글러브 핸들링, 그리고 상황 판단에 이은 정확한 송구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병살타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박수를 보낼만한 수비였다. 6회말 2사 2루 국해성의 얕은 파울 플라이 타구도 덕아웃 근처까지 달려가 슬라이딩 캐치로 걷어내는 등 팀의 시즌 첫 승에 기여하는 듯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시련까지 동시에 닥쳐올 것이라는 건 예상치 못했다. 8회말, 선두타자 오재일의 뜬공 타구의 낙구 지점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주춤거리면서 타구를 잡는 듯 했지만 글러브 포켓 안에 공이 들어갔다 빠져 나왔다. 이 실책이 결국 이날 비극적 결말의 시작이었다. 이후 야수선택까지 겹치며 위기가 증폭됐고 허경민에게 싹쓸이 2타점 3루타를 얻어맞아 4-5로 역전을 허용했다. 최주환에게 적시타까지 내주면서 점수는 4-6까지 벌어졌다. 한동희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9회초 한동희에게 마지막 만회의 타석이 주어졌다. 5-6, 1점 차로 다시 추격했고 2사 1루의 상황이었다. 한동희로서는 부담백배의 타석. 앞선 실책을 만회하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한 타석이기도 했을 것이다. 부담감과 의욕은 첫 스윙에서 느껴졌다.
김강률의 초구 145km 높은 속구에 힘차게 배트를 돌렸지만 헛스윙, 2구 143km의 속구에도 다시 한 번 헛스윙.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리고 3구 째 145km 바깥쪽 속구는 그대로 바라봤다. 루킹 삼진으로 이닝과 경기 모두 종료됐다. 한동희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동안 프로라는 거대한 무대를 주눅 들지 않고, 선배들과 함께 겁 없이 뛰어다니고 누볐던 한동희였다. 프로라는 무대의 무게감을 쉽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경기, 찰나의 순간에 한동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여론 등 프로라는 무대의 무게감을 한꺼번에 받아들였다. 그동안 간과했던 프로의 무게에 짓눌려 당차던 모습이 사라질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 한 번 하는 법이고, 스스로 우상이라고 밝힌 이대호 역시 한동희가 범한 실수 속에서 지금의 대스타로 성장했다. 이제 프로의 무게를 느낀 한동희이지만, 그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