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긴가민가했죠. 왜 제가 이 타이밍에 나가는지…”
2018년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렸던 지난 3월 2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 SK는 롯데에 5회까지 5-4로 앞서 있었다. 1점차의 살얼음 리드였지만 믿었던 에이스 메릴 켈리는 이미 102개의 공을 던진 뒤였다. 시즌 첫 등판임을 고려하면 더 이상 마운드에 세워둘 수는 없었던 상황. 필승조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그 때 트레이 힐만 감독이 선택한 선수가 바로 정영일(30)이었다.
정영일은 당시 몸을 풀면서도 “왜 내가 나가는지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입단 3년차지만, 지난 2년간 이런 상황(박빙 리드 상황)에서 경기에 나간 적은 없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집중하고 마운드에 올라서 6회를 깔끔하게 막았다. 이날 2루타 한 방이 있었던 한동희를 우익수 뜬공으로, 신본기를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역시 켈리를 상대로 안타를 쳤던 나원탁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그런데 긴장되니 더 재밌더라”. 정영일은 웃었다.

말 그대로다. 2014년 SK의 2차 5라운드(전체 53순위) 지명을 받고 KBO 리그에 돌아온 정영일은 군 복무를 먼저 해결했다. 그리고 기대를 모으며 2016년 1군에 진입했다. 하지만 성적은 초라했다. 2016년 21경기에서는 24⅔이닝에서 평균자책점 4.74를 기록했으나 비중이 큰 임무는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캠프 때부터 위력적인 공을 던지며 구단의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좋을 때 부상이 찾아왔다. 오키나와 첫 연습경기에서 팔꿈치 통증을 느꼈다.
정영일은 “작년 그때가 가장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팔꿈치 통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구단은 급하지 않았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3개월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미 좋은 감을 잃었던 정영일은 지난해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13에 머물렀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날아갔다.
그랬던 정영일은 올해 SK 불펜에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캠프 때부터 자신감이 있었다. “1군 경쟁에서 붙어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개막 엔트리에 승선한 정영일은 올해 4경기에서 1홀드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 중이다. 4⅓이닝 동안 맞은 피안타 2개가 모두 솔로홈런이어서 그렇지, 전체적인 내용은 좋다. 피안타율은 1할3푼3리, 이닝당출루허용률은 0.46에 불과하다.
아직 팀에서 자리를 잡은 단계는 아니다. 정영일도 “20경기 이상을 이렇게 나서고 이야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캠프에서 동료들의 좋은 공을 본 만큼 잘못하면 언제든지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승부처에서의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는 1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래도 자신감은 여전하다.
정영일의 현재 포심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40㎞대 중반이다. 묵직한 구위와 낙차 큰 슬라이더로 버티고 있으나 아직 100%가 아니다. 그러나 정영일은 “일부러 올해는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공을 던지다보면 아직 힘을 더 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감각만 찾으면 구속은 충분히 더 올라올 것”이라며 강속구 부활을 예고했다. 두둑한 배짱을 가진 정영일은 그간 그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회가 보인다. 고교를 평정했던 강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