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주전 포수인 이재원(30)은 새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29)에 대해 “공이 빠른 선수들은 보통 제구까지 좋기 어렵다. 하지만 산체스는 제구도 좋다”고 자신했다. 그 칭찬은 동료에 대한 의례적인 접대용 멘트가 아님이 잘 드러나고 있다.
산체스가 시즌 초반 KBO 리그를 강타하고 있다. 첫 4경기에서 26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자책점 1.04의 괴물 같은 성적을 냈다. 4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고, 투구수 제한에서 탈출한 최근 2경기에서는 모두 7이닝을 소화했다. 13일 인천 NC전에서는 7이닝 동안 3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승리를 따냈다.
산체스는 이날 최고 155㎞(구단 전력 분석 기준)의 강속구를 던졌다. 날이 풀리면 구속이 좀 더 올라올 것이라는 기대감 그대로였다. 6회와 7회에도 150㎞가 넘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NC 타자들이 빠른 공에 초점을 맞추고 타석에 들어왔지만 산체스의 힘 있는 공에 헛스윙을 연발할 정도였다. 여기에 우타자에게는 커터, 좌타자에게는 체인지업, 그리고 빠른 공을 노리는 타자에게는 커브를 적절히 던지며 거의 완벽한 투구 내용을 뽐냈다.

이런 산체스의 시즌 피안타율은 1할7푼9리로 빼어나다. 더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이다. 0.69라는 환상적인 수치를 찍고 있다. 이는 단순히 피안타만 적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볼넷이 적어야 한다. 산체스의 올 시즌 성적 중 가장 고무적인 것은 제구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산체스는 2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와중에 딱 1개의 볼넷을 내줬다. 탈삼진/볼넷(K/BB) 수치가 무려 27.00이다.
인플레이된 타구는 투수가 어떻게 제어할 수 없다. 운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그러나 탈삼진과 볼넷은 투수 고유의 능력이 크게 작용한다. 이 수치가 좋은 선수들은 설사 일시적으로 평균자책점이 좋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을 가진다. 산체스의 현재 성적은 말 그대로 역대급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27.00의 K/BB 수치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KBO 리그 역사상 이 수치가 가장 좋았던 선수는 1991년 선동렬(당시 해태) 현 야구대표팀 감독이다. 당시 선동렬은 203이닝을 던지면서 210개의 삼진을 잡아낸 반면, 볼넷은 딱 25개만 내줬다. K/BB 수치는 8.40이었다. 산체스가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선동렬의 기록에는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9이닝당 볼넷 개수가 가장 낮았던 선수는 2015년 우규민(삼성·당시 LG)으로 1.00개를 기록했다. 당시 이 기록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산체스는 현재까지 0.35개를 기록 중이다.
산체스는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데다 삼진에 대한 욕심도 그렇게 많이 없다. 맞혀 잡는 것을 선호한다. 어렵게 승부하기보다는 자신의 구위를 믿고 패스트볼을 한가운데 넣을 수 있는 배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피안타율이 높아질 수는 있어도 볼넷 수치가 확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산체스는 이 수치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저 “경기를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대답했다. 산체스는 13일 경기 후 “볼넷을 주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던지기 위해 노력한다. ‘칠 테면 쳐 보라’라는 식의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면서 “MLB와 KBO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어디든 똑같다”고 자만보다는 KBO 리그에 도전한다는 초심을 유지했다. 이 초심과 어깨가 버틴다면, 산체스의 첫 시즌은 제법 화려한 성적들이 쌓일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