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완 SK 배터리코치는 이재원(30·SK)을 신인 시절부터 지켜봤다. 한때는 선배로, 이제는 코치와 선수로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고 있다. 그런 박 코치는 일찌감치 이재원의 반등을 예고했다. 스프링캠프도 아닌, 지난해 마무리캠프부터 이를 강조했다.
비교적 칭찬에 인색한 편인 박 코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재원의 자세와 준비에서 희망을 봤다. 철저한 체중 조절로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여기에 자존심 회복과 프리에이전트(FA)라는 확실한 동기부여도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칭찬을 이어가던 박 코치는 “결과를 내야 한다”고 마지막 과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재원은 그 과제도 생각보다 빨리 풀어가고 있다. 준비했던 만큼 결과가 나온다.
이재원은 지난해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의 OPS(출루율+장타율)가 0.668에 머물렀다. 모두가 당황한 수치였다. 수비도 덩달아 흔들렸다. 주전 포수로서의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백업 포수인 이성우의 출전 비중이 늘었다. 선수는 핑계를 대지 않았지만, 결국 시즌 전 받은 무릎 수술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상쾌한 스타트를 끊었다. 이재원은 13일까지 팀의 16경기에 모두 출전, 타율 3할4푼8리를 기록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출루율이다. 무려 4할7푼4리의 출루율로 당당히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10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11개의 사사구를 얻었다. OPS도 0.887까지 올라왔다. 아직 장타가 잘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런 흐름을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나올 부속품이다.
이재원은 공격적인 타자다. 자신이 노린 공이 들어오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가 나간다. 그런데 올해는 타석에서의 인내심이 강해졌다. 최대한 많은 공을 본다. 실제 이재원은 타석당 4.44개의 공을 지켜봤다. 이는 최형우(KIA·4.45개)에 이은 리그 2위다. 쳐서 나가는 것도 있지만, 투수들을 최대한 괴롭히며 볼넷을 얻는 경우가 확실히 늘어났다. 거포 유형이 많은 SK에서는 이런 능력도 밸런스에 큰 도움이 된다.
타석에서의 기분 좋은 출발은 수비로도 이어진다. 체중을 줄이면서 날렵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로킹, 견제 등에서 발전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포구 자체도 투수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공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통계전문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재원의 평균대비 수비 승리기여도는 0.140으로 김민식(KIA·0.147)에 이어 리그 2위다. 지난해에는 리그 9위였다.
트레이 힐만 감독도 이재원의 반등에 반색하고 있다. 예상보다 이재원을 더 많은 이닝에 투입하고 있는 이유다. 힐만 감독은 “현재까지 투수 리드를 잘해주고 있다. 또한 정말 훌륭한 블로킹을 많이 했다. 작은 요소지만, 이는 투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더 나은 타격도 보여주고 있다”면서 “비시즌 때 체중을 줄이면서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었다. 기대 이상으로 잘 준비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주장으로서의 평가도 만점에 가깝다. 항상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동료들의 기를 살린다.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팀을 이끌어간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힐만 감독도 “이재원이 팀의 주장으로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보기 좋은 장면”이라면서 “이재원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련을 겪은 이재원이 한 단계 더 성숙한 포수와 리더로 돌아왔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