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른 SK 덕아웃, 이재원이 보여준 주장의 품격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04.18 14: 00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SK는 17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9-5 역전승을 거두고 4연승을 질주했다. 그러나 스코어에서 보는 것처럼 쉬운 경기는 아니었다. 1회부터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되며 3점을 내주고 끌려갔다. 유격수 박승욱이 수비를 하다 부상을 당해 교체됐고, 타선은 몇몇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3-3으로 맞선 4회 2사 1,3루는 변곡점이었다. 이날 언더핸드 박종훈을 겨냥해 1번 타자로 나선 이진영이 호시탐탐 안타를 노렸다. 애써 동점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점수를 주면 또 분위기가 KT로 넘어갈 수 있었다. 베테랑 이진영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을 했다. 1루 주자도 스타트를 끊었다. KT가 승부를 걸었다. 다만 빗맞아 3루 측 SK 덕아웃으로 공이 향했다.

3루수 최정이 잡을 수는 없는 궤적이었다. 덕아웃으로 공이 들어가는 것이 확연해 모든 야수들과 덕아웃에 있는 모든 SK 선수도 포기했다. 하지만 한 선수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 글러브를 뻗었다. 물론 당장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공도 잡지 못했고, 이 선수는 덕아웃 난간을 타고 한 바퀴를 돌아 떨어졌다. 자칫 부상이 올 수도 있는 아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최정도 엉덩이를 툭 한 번 치며 자신의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주장이자 팀의 주전 포수였던 이재원(30)이 허슬플레이의 주인공이었다. 비록 아웃카운트를 잡지는 못했지만, SK의 모든 선수들은 이 플레이 하나로 끓어올랐다.
당시 마운드에 있었던 박종훈은 “그 플레이를 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이닝은 무실점으로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팀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몸을 던지고 있는데, 내가 더 신중하게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너무 힘이 나는 플레이였다”고 고마워했다. 박종훈은 그 마음가짐대로 이진영을 땅볼 처리하고 이닝을 무사히 마쳤다.
SK 덕아웃은 그 플레이 이후 뭔가 홀린 듯 힘을 냈다. 어수선한 플레이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5회 제이미 로맥은 곧바로 역전 투런포를 쳤다. 최정은 멋진 다이빙 캐치를 선보였고, 외야수들은 어려운 타구를 끝까지 따라가 잘 잡아냈다. 로맥은 “물론 부상을 당하면 안 되지만, 야수들은 아웃카운트를 늘려야 할 상황에서 몸을 사리면 안 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데 이재원이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덕아웃에 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도 올라오는 덕아웃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덕아웃은 그런 플레이 하나하나에 특유의 분위기로 반응한다. 주장이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위기가 확 올라왔다”고 미소 지었다. 때로는 작은 플레이 하나가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가 있다. 이날은 이재원의 허슬플레이가 그랬다.
이재원은 올 시즌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박경완 배터리코치가 “모든 부분에서 다 좋아졌다. 체중을 감량해 날렵해졌다. 블로킹이나 홈 플레이트에서의 움직임은 그 어떤 포수와 비교해도 뛰어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리더십도 합격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이재원이 팀의 주장으로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정작 이재원은 경기 후 이 플레이로 조금 혼이 났다. 아웃카운트 하나보다는 부상 방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재원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플레이로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면 만족한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SK의 캡틴이 솔선수범으로 품위와 권위를 만들어가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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