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격론이 이어졌으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징계 수준이었다. LG의 적극적인 소명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KBO(총재 정운찬)는 20일(금) 오후 2시 KBO 회의실에서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사인 훔치기로 논란이 된 LG에 대한 징계를 심의했다. 구단에는 2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고, 양상문 단장에게는 엄중 경고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장 코칭스태프에게도 책임을 물어 벌금을 물었다. 총 책임자인 류중일 감독은 1000만 원, 1·3루 주루코치인 한혁수 유지현 코치에게도 100만 원씩의 벌금을 매겼다.
발단은 지난 4월 18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LG측 덕아웃 옆 통로에 붙은 포수 사인 분석표였다. 명백한 사인 훔치기의 증거였는데 이것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걸리며 논란이 불거졌다. LG는 19일 KBO에 경위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대표이사와 류중일 감독이 동시에 사과했다. LG는 이날도 팀장급 인사가 이날 상벌위를 찾아 당시 상황을 소명했으나 징계를 피해가지 못했다.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 사인 캐치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했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벌위 내부에서도 암암리에 이뤄지는 사인 캐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경기 전에 전력분석을 통해 상대의 사인이나 버릇을 간파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은 10개 구단 모두가 한다. 현실적으로 여기까지 불법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이번의 LG 사태는 경기 전이라고 해도 외부에서 정보가 명시적으로 전해졌기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규정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로 보일 수밖에 없어 징계 대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대다수의 상벌위원 또한 징계를 기본적인 범주에 깔고 이번 회의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전달 과정에서 미숙했던 LG의 일 처리가 문제였다.
▲ 언제, 어느 시점부터 게시됐나
이에 대해 LG 구단은 모호한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전에 게시가 됐다면 그나마 낫다. 미팅을 통해 공유해야 하는 것을, 원정 경기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게시물로 공유했다는 LG의 해명과도 맞다. 하지만 경기 중간에 상대 사인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 급히 게시물을 수정했다면 심각한 위반 상황이 된다. 상벌위원도 이를 집요하게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상벌위에 참여한 관계자는 “경기 중간에 붙은 게시물이 아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붙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점을 말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KBO도 대다수의 정황이 경기 전부터 붙어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고, 경기 중간에 이 게시물이 붙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추지 못해 이 부분은 LG의 주장을 인정했다.

▲ 류중일 감독과 코치들은 진짜 몰랐나, 왜 징계를 받았나
가장 큰 쟁점이 된 부분이다. 게시물이 붙은 자리는 덕아웃과 클럽하우스를 연결하는 통로다. 엄밀히 따지면 덕아웃 바깥이지만, 선수들이 수시로 이동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심지어 취재진도 볼 수 있는 구역이다. 류중일 감독은 19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게시물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벌위원들은 이 부분을 100%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역시 집중적인 추궁이 이뤄진 부분이었다.
다만 타 구단 등 현장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해당 구역은 감독의 이동 동선이 아니라는 결론이 모아졌다. 류 감독이 실제로 몰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현장 출신들은 “감독이 그런 일까지 세세히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LG 또한 “전력분석팀 직원이 독단적으로 한 일이다. 코칭스태프는 몰랐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상벌위는 이 부분은 인정했다. 다만 현장 관리의 책임을 물어 류 감독에게 10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그렇다면 한혁수 유지현 코치는 왜 징계를 받았을까. 상벌위는 “코치들까지 모를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코치들은 선수들과 경기에 앞서 전력분석을 함께 하는 사이다. 경기 중 감독보다 선수들과의 대화 빈도도 더 많다. LG는 “코치들도 몰랐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상벌위는 이는 인정하지 않았다.
▲ 왜 벌금과 경고로 끝났나
KBO 규정에는 불법적인 정보 전달에 대해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구체적이지는 않다. 이에 상벌위는 법리적으로 제26조 조항을 이번 사태에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꼼꼼한 심의를 거쳤고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의혹이 있는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줄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사실 이도 언론 카메라를 통해 알려진 것이었다.
한 관계자는 “만약 보도가 되지 않았다면 LG가 계속 덕아웃에 그런 게시물을 붙여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그랬다는 의심은 있지만, 이를 명확하게 증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부 위원들은 벌금보다 더 강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명확한 증거 없이 마냥 처벌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구단에 내려진 2000만 원의 벌금은 역대 사례를 종합해도 두 번째로 많은 금액으로, 그렇게 가볍지는 않은 수준이다. 류 감독의 1000만 원 징계는 역대 감독에게 내려진 최고 벌금액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