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판 기회가 있을지는 몰랐다. 그래도 1군이 주는 공기 자체가 엄청나게 무거웠다. 경기 전 화장실을 몇 차례나 다녀와야 했다. 이승진(23·SK)의 1군 첫 날은 연신 그 긴장감과 싸우고 있었다.
이승진은 “화장실에 여러 번 갔을 정도로 너무 긴장을 했다. 엄청 긴장하다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웃음이 나기도 하더라”며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그런 긴장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승진은 “이런 경기(1군 데뷔전)에서 긴장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즐기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고 했다. 12-3으로 크게 앞선 상황 또한 도움이 됐다.
결과는 호투였다. 1일 생애 첫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이승진은 대구 삼성전에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삼진 하나를 잡았고, 출루는 허용하지 않았다. 최고 구속은 148㎞까지 나왔고, 특유의 변화무쌍한 볼 움직임으로 범타를 유도했다. 승리나 세이브, 홀드와 같은 기록은 없었으나 충분히 성공적인 1군 데뷔전이었다.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법한 하루였다.

지금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2014년 SK의 2차 7라운드(전체 73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1군 문턱은 높았다. 다만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군 복무를 해결하는 동안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제대 직후인 지난해 11월에는 팀의 마무리캠프 명단에 합류해 1군 코칭스태프에 선을 보였다. 프런트도 충분한 가능성을 엿본 시기였다.
당시 염경엽 단장은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데다 공의 움직임이 좋다. 자연적인 커터 움직임이 형성된다”면서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선발로도 쓸 수 있는 자원”이라고 주목했다. 손혁 투수코치 또한 이승진을 비롯, 정동윤 이원준 허웅까지 네 명의 우완 영건에 주목했다. 손 코치는 “SK라는 팀이 발전하려면 이 네 명의 어린 투수 중 1~2명은 1군에 올라와야 한다”고 했는데 이승진이 첫 테이프를 성공적으로 끊은 것이다.
비록 개막 엔트리에 들지는 못했으나 오키나와 전지훈련까지 완주하면서 한 단계를 밟고 올라섰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격려를 받고 2군에 내려가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1군에 있을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사실 데뷔전 기회를 놓치는 투수들도 있고,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투수들도 제법 많다. 이를 고려하면 이승진의 시작은 매우 순조로운 셈이다.
이승진은 “최근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퓨처스리그에서 8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초반에 무너졌었던 몇 경기를 빼면 그렇게 나쁘게 던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픈 곳이 없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힐만 감독은 강한 공을 던지는 이승진을 불펜에서 활용하며 성장을 도울 생각이다. 앞으로도 팀이 크게 앞서거나 뒤지고 있을 때 등판해 1군의 벽과 맞서 싸울 가능성이 크다.
첫 경기를 잘 치렀지만 들뜨는 것은 없다. 이승진은 초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승진은 “앞으로도 오늘 경기처럼 타자들에게 볼넷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싶다”면서 “오히려 ‘칠 테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강하게 던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승진이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잡는 시간이 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