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승리가 날아갔지만 배영수(37·한화)는 웃었다. 승리를 날려 고개를 못 든 후배 이태양(28)에게 오히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태양의 커브에 희망을 봤다.
배영수는 지난 3일 대전 LG전에서 5이닝 5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 호투를 펼쳤다. 역대 6번째 개인 통산 1400탈삼진 위업도 세우며 승리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다. 3-0으로 리드하던 6회 무사 1루에서 총 투구수 76개에 교체됐지만, 최근 구위가 올라온 이태양이 두 번째 투수로 올라왔다.
그러나 이태양은 첫 타자 박용택에게 우월 투런 홈런을 맞아 1점차로 쫓겼다. 김현수를 땅볼 처리했지만 채은성에게 초구에 좌중간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3-3 동점이 되어버렸다. 배영수의 승리가 날아간 순간. 동점을 내준 뒤 교체되며 덕아웃에 온 이태양은 배영수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배영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팀이 이겼으면 됐다. 개인 승리는 상관없다. 1400탈삼진 기록도 마찬가지"라며 "태양이가 홈런을 맞았지만 커브가 좋았다.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제구뿐만 아니라 각도 좋아졌다. 커브를 자기 것으로 만들면 더 좋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태양은 이날 14개 공 중에서 3개의 커브를 던졌다. 박용택에게 홈런을 맞긴 했지만 2구째 114km 느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3구째 커브는 박용택이 속지 않아 볼이 됐지만 몸쪽 낮게 잘 떨어졌다. 다음 타자 김현수에게 던진 6구째 커브는 바깥쪽으로 빠져 볼이 됐다.
배영수가 이태양에게 커브를 칭찬하며 독려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태양이는 포크볼을 잘 던지지만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앞으로 다시 우리 팀 선발을 해야 할 투수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불펜으로 던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태양이 선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올 시즌 직구 구위를 회복한 이태양이지만 주무기 포크볼 의존도가 높다. 느린 커브를 추가한다면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데 효과적이다. 직구 평균 구속이 137km밖에 되지 않는 배영수이지만 직구 외에도 포크볼·슬라이더·체인지업·투심·커브 등 다양한 구종으로 살아남고 있다.
배영수는 "내 승리는 괜찮다. 태양이가 커브 하나 건졌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며 이태양을 격려했다. 캠프 때부터 어린 후배들에게 저녁 식사를 쏘며 "나를 이겨야 우리 팀에도 미래가 있다"고 분발을 촉구한 배영수였다. 송진우 투수코치는 "배영수가 후배들을 챙기면서 훈육도 잘한다.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단순 기록에서 드러나지 않는 베테랑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waw@osen.co.kr
[사진] 배영수-이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