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의 사인요청을 외면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행동이 이슈가 되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원정경기에 나선 모 구단 선수들이 팬들의 사인요청을 외면하는 모습을 기획 방송한 뒤로 선수와 팬 사이의 사인 문화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 주말 두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이야기 도중 "요즘 왜 선수들의 팬 사인 이야기가 계속 나오나요"라며 궁금해했다. 일련의 과정을 들은 류 감독은 '선수들은 팬들의 사인 요청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해 했다. 그는 "삼성 감독 시절에도 자주 선수들에게 이야기 했는데, 팬들에게 사인 잘 해주라고 했다"며 "팬들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LG 구단주님을 만난 자리에서 구단주께서 '박용택은 요즘도 사인 잘 해주냐'고 물어보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박용택은 LG는 물론 KBO리그에서 대표적으로 팬들에게 사인 잘 해 주는 선수로 꼽힌다. (박용택은 올해 미디어데이에서 우승 공약 중 하나로 '우승하면 1994년 이후 24년 만이다. 24년에 365일을 곱하면 8760일이다. 사인볼 8760개를 팬들에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린이날 경기를 마친 후 박용택을 비롯해 LG 선수들은 팬들에게 한참 동안 사인을 해주고 귀가했다.

선수들의 팬 서비스를 강조한 류 감독은 선수들이 힘든 점도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와 야구장 환경이 다른 점을 꼽았다. 메이저리그 같은 경우는 야구장 내에서 훈련이 끝난 선수들로부터 사인을 받을 시간이 있지만, 국내 구장은 그물망 등으로 관중과 선수들 사이의 소통이 힘들다.
류 감독은 "운동장 시설이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일부 구장은 출퇴근 동선이 구분되지도 않고, 선수와 팬들 사이를 구분하는 바리케이트도 없다. 출퇴근길에 팬들에 둘러싸여 사인을 시작하면 무한정 길어지기도 한다. 원정에서는 특히 힘들다"고 말했다.
팬들의 요청에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 없어 곤란하다. 원정에서는 시간에 쫓겨 팬들의 사인요청, 사진촬영에 응하기 힘든 점은 있다. 구단 버스로 도착해, 짐 풀고 훈련하고, 경기 후에는 다 같이 이동하느라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기 힘들 때도 있다.

미국, 일본에서도 감독 생활을 한 트레이 힐만 SK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팬들과 스킨십에 적극적인 힐만 감독은 팬서비스를 강조하면서도 "미국이나 일본도 선수마다 다르다. 팬과의 자리가 불편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선수들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선수들도 빨리 퇴근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며 "원정 경기에서 선수들이 사인요청을 외면하는 것은 팬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경기 준비, 휴식, 팀 전체 일정에 따라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 전용 주차장, 원정 버스를 탑승하러 가는 통로, 원정 숙소 로비 등은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선수들이 보호되는 공간이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프로야구 선수들의 마인드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어린이 팬들에게는 바쁘더라도 1분의 시간을 쪼개서라도 사인을 해준다면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결국 구단과 선수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류 감독은 "힐만 감독의 제안으로 SK가 여는 사인회도 좋은 사례가 될 거 같다"며 "홈경기 때 전날 선발 투수 등 경기에 크게 지장이 없는 선에서 선수 몇 명이 참석하는 사인회를 열면 좋을 것"이라고 구단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LG 구단에서도 적극적인 팬사인 행사를 마련해서 하자는 의중이었다. /orang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