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28·SK)은 팀 투수 중 가장 고되고, 또 바쁜 선수다. 시즌 시작 전부터 ‘스윙맨’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평소에는 불펜에서 롱릴리프로 대기한다. 그러다 김광현(30)의 휴식이 필요하면 곧바로 선발로 전환한다.
말처럼 쉬운 보직이 아니다. 선발과 불펜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보직이 명확한 남들보다 두 배의 자기 관리는 기본이다. 여기에 체력도 강해야 하고, 루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확장성도 필요하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돌아온 김광현에 이닝 제한을 건 SK에서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김태훈이 낙점을 받았다. 그 자체가 팀의 기대치를 증명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에도 이 보직을 맡았던 김태훈이다. 외국인 좌완 스캇 다이아몬드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트레이 힐만 감독은 김태훈을 눈여겨봤다. 초반에는 기세가 좋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1군 첫 승도 따냈다. 하지만 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몇 차례 고비를 넘기지 못했고, 용두사미 성적을 남겼다. 김태훈의 지난해 평균자책점은 꾸준히 높아지더니 6.53에서 시즌 종료를 맞이했다.

고된 보직을 소화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했다. 하지만 시즌 성적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를 돌아본 김태훈은 “경험이 부족했다”고 자신의 무너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올해는 제대로 일을 내보겠다고 다짐했다. “100이닝”을 이야기한 기자의 이야기에 “그보다 더 던져야 한다”고 목표를 높게 잡기도 했다. 그렇게 김태훈은 한 단계 더 발전한 투수가 되어 있었다.
김태훈은 9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을 보냈다. 7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시즌 세 번째 승리를 장식했다. 이는 김태훈의 생애 첫 7이닝 소화이자, 생애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이기도 했다. 7회까지 147㎞의 강속구를 던질 정도로 컨디션은 절정이었다. 제구도 잘 됐고, 슬라이더의 움직임도 좋았다.
사실 위기가 있었던 김태훈이다. 4월 20일 롯데전에서 4⅔이닝 4실점으로 썩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다시 선발로 돌아온 5월 3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1⅔이닝 6실점(5자책점)으로 무너졌다. 초반에는 좋다가, 갈수록 나빠지는 그래프는 지난해와 흡사했다. 때문에 이날 등판은 지난해와 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중간고사였다. 하지만 김태훈은 이 시험에서 보란 듯이 만점에 가까운 답안지를 제출했다. 거침이 없는 투구였다.
이제 김태훈은 불펜으로 돌아간다. 휴식과 재정비를 마친 김광현이 주말 LG와의 3연전 중 한 경기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태훈은 휴식을 취한 뒤 다음 주부터는 불펜에서 대기할 예정이다. 섭섭함은 없다. 김태훈은 “우리 팀에 나보다 더 좋은 선발투수가 많기 때문에 선발 보직을 내놓고 불펜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아쉬운 건 전혀 없다”고 웃어 보인다.
선발로 익혔던 몸의 기억은 잠시 잊는다. 다시 불펜투수의 몸으로 돌아가 팀에 기여한다는 각오다. 김태훈은 “마운드에서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던지려고 한다. 불펜에서도 거기에 맞게끔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에 기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먼 미래를 보기 보다는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숫자에 찍히지 않는 김태훈의 가치가 SK 마운드를 지탱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