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하면서도 너무 좋아요."
자신의 은퇴식에서 이토록 해맑은 선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승희(26)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박승희는 10일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HS VILLE에서 가진 '2018 스포츠토토빙상단 시즌 하례식 및 워크숍'에서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인 케이토토가 주최한 은퇴식을 맞이했다. 길었던 선수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한 것이다.

#은퇴
하지만 박승희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주위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신다. 하지만 저는 홀가분하고 너무 좋다"며 눈웃음을 날린 박승희는 "선수로서는 끝이다. 하지만 인간 박승희로는 끝이라기보다 노래 1절이 끝나고 2절로 이어지는 순간인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일을 계속 이어갈테니까 크게 아쉬움이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고 자신있게 은퇴 소감을 밝혔다.
3번의 올림픽에 출전, 금메달 2개 포함 5개의 메달을 따냈다. 한국 여자 선수 최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또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한국 선수 최초로 두 종목에서 올림픽에 나선 선수가 됐다. 그런 쉽지 않았던 도전을 돌아보는 순간, 잠시 아련한 모습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는 박승희였다.
박승희는 "사실 운동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은 일에도 타격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운동이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이상한건지는 모르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게 꺼내보이기도 했다.
#패션
박승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패션'이었다. 어릴 때부터 예쁜 걸 좋아했고 하얀 벽지만 봐도 뭔가 그려 넣고 싶었다. 최근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여행을 갔다오기도 했다. 박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미술이나 패션 쪽이었다. 취미삼아 운동을 한 것이 운좋게 지금까지 왔다. 소치 대회 끝나고 은퇴하려했는데 평창까지 왔다. 여행 후 그래픽과 아트 디자인에 매력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색감에 민감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은 패션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좀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박승희는 "런던 쪽으로 해외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혼자 있기 외롭고 싫어서 포기했다. 패션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생각만 하고 있다. 5월까지는 쉬고 6월 중순부터 차근차근 미술과 패턴을 배워볼 생각이다. 평창 때문에 중단한 상태지만 원래 배우고 있었다. 3개월 정도 특강을 통해 경험해 보겠다. 지금은 떨리고 두려운 것이 있는데 막상 시작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박승희가 다시 선수로 복귀, 올림픽에 도전하는 일은 없을까. 박승희는 "선수로 올림픽 도전 기회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코치로는 모르겠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미래는 100% 확신할 수 없는 거니까. 후배들을 보듬어 주고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주는 심리 상담 역할을 할 수 있는 코치면 나중에 해보고 싶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정말 딱 한 번 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둘다 해봤으니까 선수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으니까"라며 빙상에 대한 미련을 살짝 드러냈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의 전향 계기는 뭘까도 궁금했다. 박승희는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실 올림픽을 가겠다는 생각 없이 은퇴전까지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전지훈련을 가게 됐고 이후 동생과 함께 평창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선발전을 나갔고 운좋게 됐다"고 말했다.
평창 경기 후 박승희에게 관중들이 보내는 환호성은 상당했다.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박승희는 "종목이나 결과 이런 것은 상관이 없다. 올림픽이라는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굉장히 울컥하게 만든다. 그 속에 있는 선수들은 더 하다. 쇼트트랙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끝나면서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감정도 제 감정이 아니었고 많이 아쉬웠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박승희는 올림픽에서 많은 선수들의 아픔을 봤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는 박승희는 "결과가 안좋으면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계속 파고든다. 그래서 다른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안타깝다. 그런 선수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 성격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순간 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박승희는 "쇼트트랙 때 심석희가 넘어져 울면서 왔다. 안아주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힘이 든다. 쇼트트랙은 스피드스케이팅에 비해 변수가 많아 그런 부분이 힘들다. 스피드는 잘 넘어지진 않으니까"라며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