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답답해서요”
지난 4월 1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 SK는 NC와의 경기에서 선발 앙헬 산체스의 호투를 등에 업고 이겼다. 모든 선수들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 장비를 챙겨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와중에, 딱 한 명의 선수가 덕아웃에 남아있었다. 수훈선수 인터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정의윤(32)은 한참이나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연신 한숨을 내쉬웠다. 이유를 묻자 그는 “답답해서 그렇다”고 짧게 말했다.
5월 10일 창원 마산구장. 땅볼을 치고 들어온 한 선수는 덕아웃에서 계속 머리를 쥐어짰다. 모든 것이 안 풀린다는 듯 애꿎은 머리카락에 분풀이를 했다. 이날 볼넷 두 개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는 방망이에 속이 타는 듯 했다. 한동민(29)이었다. 얼굴 표정에서는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정의윤과 한동민은 예상보다 못한 성적을 내고 있는 타자들이다. 정의윤은 10일 현재 시즌 25경기에서 타율 2할1푼8리, 4홈런, 1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15에 머물러 있다. 이보다는 조금 낫지만, 한동민도 웃기는 어렵다. 한동민은 34경기에서 홈런 8개와 20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타율은 2할3푼5리까지 처졌다. 타자들의 심리상태는 타격에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답함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사실 운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정의윤은 SK에서 가장 불운한 타자였다. 시즌 초반 잘 맞은 홈런성 타구가 폴대를 살짝 비껴나가거나, 야수 정면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민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타구가 상대의 예리해진 시프트에 걸리는 경우가 잦았다. 혹은 야수의 키를 살짝 넘지 못하거나, 펜스 앞에서 타구가 잡히곤 했다. 심리적인 박탈감은 차라리 삼진보다 더 컸다.
인플레이타구 타율(BABIP)은 두 선수가 얼마나 불운한 시즌 초반을 보여주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의윤의 BABIP는 1할9푼7리에 불과하다. 정의윤의 2016년 BABIP는 3할1푼8리, 지난해는 3할5푼이었다. 한동민의 BABIP는 지난해 3할2리에서 올해 2할4푼4리로 대폭 깎였다. SK에서 BABIP가 2할5푼 아래인 타자는 두 선수뿐이다.
물론 두 선수가 발이 빠른 유형의 선수는 아니지만, 대신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자주 날리는 유형의 선수들이다. BABIP가 이렇게까지 낮을 이유는 없다. 실제 SK의 팀 BABIP는 3할2푼9리, 리그 평균은 3할3푼1리다. 뭔가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운이 없다"는 울분에 마음고생이 심해지면 경기력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2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다보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더 들어간다. 이른바 악순환이다. “그럴수록 더 공격적으로 스윙을 하라”는 힐만 감독의 주문은, 그래서 불운을 푸는 마법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어차피 BABIP와 같은 기록들은 대개 평균으로 수렴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의윤은 10일 창원 NC전에서 0-1로 뒤진 3회 NC 선발 정수민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쳐냈다. 주중 3연전에서도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담장을 넘겨 버리며 기분 전환을 했다. 정의윤은 꾸준히만 출전하면 3할과 20홈런을 보장할 수 있는 선수다. 한 번의 계기만 찾아오면 충분히 팀에 공헌할 수 있는 타격의 소유자다.
한동민도 9일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10일에는 볼넷 두 개를 골라 이틀 연속 1루를 자주 밟았다. 한동민의 출루율은 3할4푼8리로, 타율보다 1할 이상 높다. 순장타율(장타율-타율) 역시 팀에서 4위다. 모든 지표는 한동민의 성적이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만한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으나 좀 더 홀가분하게 타석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불운과의 전쟁은 계속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