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주전 포수이자 올 시즌 경력 최고의 성적을 낼 기세인 이재원(30)은 11일 인천 LG전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무릎에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원은 9일 마산 NC전에서 상대 파울타구에 왼 무릎을 맞아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참고 10일 NC전에 다시 나섰으나 이번에는 자신의 파울타구에 같은 부위를 맞았다. 가뜩이나 아픈 부위에 또 맞았으니 통증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자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11일 이재원의 이름을 선발 오더에서 슬며시 지웠다. 경기 전 훈련도 최소화했다.
되도록 11일 경기에는 뛰지 않고, 이성우가 한 경기를 모두 책임진다는 구상이 있었을 터다. 하지만 이재원은 “경기에 나갈 수 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힐만 감독도 내심 흐뭇한 눈치였다. 힐만 감독은 11일 경기를 앞두고 “전날 경기에도 (교체 상황에서) 부상이 있음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하더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미소 지었다.

간혹 엔트리에 포수 세 명을 포함하는 팀도 있지만 SK는 일관적으로 두 명의 포수만 1군 엔트리에 넣고 있다. 여기서 한 명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면, 나머지 한 명의 부담이 커진다. 벤치의 경기 막판 타순 운영에도 큰 애로사항이 생기기 마련이다. 포수 타석에서 대타나 대주자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원은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쉴 수도 있었지만, 자청해서 대기한 이유다.
그런데 11일 경기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LG와 난타전을 벌인 SK는 7회 공격까지 6-8로 뒤졌다. 반격 기회는 7회에 왔다. 1사 후 김동엽이 좌전안타로 출루했고, 2사 후 나주환이 볼넷을 골랐다. 다음 타자는 이성우였다. 이성우는 베테랑다운 노림수와 끈질김이 돋보이는 타자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해결사 유형은 아니다. 그러자 SK는 이재원을 대타로 냈다. 이재원도 일찌감치 이 상황에 대비하며 돌리고 있었던 차였다.
아직 무릎이 쑤시는 상황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연습 때부터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그리고 1B-1S에서 김지용의 3구째 142㎞ 포심패스트볼을 놓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돌린 이재원의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1루 관중석, 그리고 덕아웃은 주장의 홈런에 달아올랐다.
물론 SK는 이날 경기에서 불펜이 난조를 보이며 9-14로 역전패했다. 결승홈런이 될 수도 있었던 이재원의 한 방은 빛을 잃었다. 하지만 팬들과 덕아웃에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강한 투지를 남겼다. 이런 투지는 때때로 기적을 만드는 기분 좋은 전염병이 되기도 한다.
이재원은 이날 선발 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장의 임무는 잊지 않았다. 공수교대 시간에 가장 앞에 나서 선수들을 맞이했고, 또 격려했다. 아픈 선수에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아는지, 1루 관중석을 메운 홈팬들도 소리 높여 이재원을 환영하고 있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