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이버 투수’로 불렸다. 그다지 달갑지 않은 별명이었다. 팀의 1차 혹은 1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1군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하며 시간만 흘러갔다. 화려한 데뷔를 이룬 비슷한 순번의 타 팀 선수들과 더 비교됐다.
김태훈(28)과 서진용(26)은 SK의 기대주였다. SK 허정욱 스카우트팀 매니저는 “김태훈은 당시 142㎞까지 구속이 나오는 왼손 투수였다. 공 끝이 위력적이고, 오른쪽 발이 약간 크로스되면서 공의 각이 아주 좋았다. 탈삼진 능력도 뛰어났다. 컨트롤에 기복은 있었지만, 커브의 브레이크도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인창고를 졸업한 김태훈은 그렇게 SK의 2009년 1차 지명을 받았다.
서진용은 깜짝 지명이었다. 많은 팬들이 놀랄 정도였다. 고교 실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드래프트를 기억하는 복수 팀의 관계자들은 “서진용은 1~2라운드 지명감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의 실적보다는 향후 가능성에서 모든 구단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SK는 2011년 드래프트에서 서진용을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뽑았다.

허 매니저는 “경남고 투수층이 두꺼워서 주전 투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경기에 거의 못 나왔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봄 연습경기를 보는데 130㎞대 후반을 던지더라. 공에 임팩트를 주는 자질이 보였다. 그래도 앞순위 후보는 아니었는데 구속이 144~145㎞로 올라가더니 막판에는 147㎞까지 끌어올렸다. 공이 점점 좋아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면서 “경험은 많지 않지만, 주력이 경남고에서 가장 좋았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좀처럼 1군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했다. 김태훈은 어깨가 좋지 않았고, 서진용은 무릎 부상이 있었다. 여기에 당시 쟁쟁한 투수들이 버틴 SK 1군의 벽은 높았다. 또한 당시 코칭스태프는 공의 힘보다는 제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기준에서 두 선수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선수였다. 그렇게 별다른 실적 없이 군에 입대했다. 높은 순번에서 지명됐던 만큼, 팬들의 실망은 더 컸다.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실체가 없는 ‘사이버투수’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그러나 SK가 봤던 두 선수의 재능은 분명히 살아있었다. 제대 후 서서히 입지를 넓혀가던 두 선수는 이제 SK 마운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김태훈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서진용은 필승조이자 차기 마무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올해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싱싱한 공을 던지고 있다.
지난 주에는 SK가 고비를 넘기는 데 일등공신 몫을 했다. SK는 8일 마산 NC전에서 에이스 메릴 켈리를 내고도 영봉패 수모를 당했다. 9일 선발은 어찌됐건 SK에 강한 면모가 있는 이재학이었다. 그러나 김태훈이 7이닝 2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선보이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SK가 지난 주 위닝 위크를 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동력이었다.
“현재 불펜투수 중 공이 가장 좋다”라는 칭찬을 받는 서진용 또한 지난 주 3경기에서 3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힘겨웠던 SK 불펜의 보루가 됐다. 4월 중순 이후 다소 페이스가 처졌던 서진용은 5월 들어 가진 5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 피안타율 1할1푼8리로 제 페이스를 찾았다. 날이 따뜻해지고 빠른 공 구속이 붙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선수의 설명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 또한 “김태훈이 지난 주 매우 뛰어난 피칭을 했다. 그간 선발과 불펜 등판을 모두 통틀어 NC전만큼 좋은 적은 없었다”고 활짝 웃으면서 “서진용도 계속 좋아지고 있다. 1이닝을 효율적으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 베스트 피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누구도 그들을 사이버투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SK의 선택이 빛을 발할 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skullboy@osen.co.kr
[사진] 김태훈(왼쪽)-서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