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무려 8년 만의 신작 '버닝'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 충무로의 독보적 존재감 유아인,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스티븐연, 이창동이 선택한 새로운 뮤즈 전종서의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특히 '버닝'은 최근 폐막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칸에서 첫 공개된 '버닝'은 공개 후 해외 매체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칸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은 칸영화제 역대 최고 평점을 매기는 등 연이어 최고 평점을 경신하며 한국 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탄생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버닝'은 아쉽게도 칸 심사위원단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 등 2관왕을 수상했다. 수상 불발에도 '버닝'이 거둔 성과는 유의미하다. '버닝'은 칸을 홀리며 '칸이 사랑하는 거장' 이창동 감독의 성공적인 귀환을 알렸다.
이창동 감독은 칸 현지 반응에 대해 "예상보다는 훨씬 좋았다. '왜 이러지?' 이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창동 감독은 "보통 칸 경쟁 부문에 예술 영화만 초청되는 건 아니다. 개성 강한 영화라서 호불호가 갈린다. 사람들이 무난하게 좋아하는 영화도 가끔 오긴 하지만, 개성 강한 영화들이 대체로 많이 있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또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경우도 없다"며 "'버닝'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다고 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읽히는 건가라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상 불발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라는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이 이상하게 칸영화제 결과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며 "영화에 대한 평가도 관객들이 낯설어 한다고 하더라도, 수상을 하면 인정받는 것이 돼서 오히려 좋게 해석하게 되는 감상의 이점이 있다"며 "그런데 (수상 불발로) 그게 사라져 버렸다. 기대를 너무 높여놔서 실망감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 개인적인 면도 그렇지만, 그쪽에서 말했던 것처럼 '버닝'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면 한국 영화 전체에 활력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숨겨둔 친절한, 혹은 불친절한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영화다. 관객들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들의 몫으로 빈칸을 남겨두며 여러 가지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 힌트들에 대해 "제 입장에서는 친절한 힌트도 있고 눈치 못 채게 알아보기 어려운 힌트도 있다. 꽤 여러 겹의 힌트를 심어놨다. 눈에 보이는 힌트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힌트마저도 '그게 힌트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버닝' 속 상징과 은유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성공모델로만 따라간다면 흥행에 성공하겠지만, 크게 보면 그게 발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모험해야 하고, 오늘 낯설게 보더라도 다음에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게 우리 영화 산업에서도 선순환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제 영화에 대한 오해가 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지 않았고,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그저 질문할 뿐이다. 거기에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메시지는 오락 영화가 더 전하기가 쉽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메시지가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의문이 든다"며 "저는 항상 질문했다. 그 질문이 불편할 수 있지만, 질문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분에게는 감동이 됐든, 뭐가 됐든 감흥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 역시 질문하는 영화다. 우리 세상의 미스터리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 서사에 대한 질문이라든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인식하고, 있고 없고에 대한 질문도 있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미스터리까지 있기 때문에 '버닝'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많은 영화들이 흥행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흔적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반면 어떤 불편한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남을 수도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ma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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