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오셨어요?"
아직 경기를 하려면 며칠이 남았는데. 벌써 한국 응원단이 온 것일까. 돌아다보니 '벽안'의 러시아 미녀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 며칠 빨리 도착했다. 이곳은 오는 24일(한국시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멕시코와 피할 수 없는 F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를 격전지다.

처음엔 그냥 '인삿말 정도겠지' 했다. 하지만 전혀 뜻밖에도 한국어가 유창하다 못해 사실상 한국사람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셰르빈나 인나(22)라는 이름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인나는 여기 로스토프나도누 출신이다. 로스토프나도누 경제대학교 3학년인 인나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고교 3학년이던 2012년 친구들의 소개로 한국어 교육원을 알게 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인나는 "처음 한국이란 나라와 언어를 접하고 신기했다. 러시아 문화와는 많이 달라서 신기했고 한국의 문화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고 웃었다.
인나의 학교에는 한국의 수원대 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머물고 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인나의 한국어도 쑥쑥 성장했다. 처음엔 러시아어를 섞어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한국어만 써도 괜찮다. 원래 일본어와 영어도 유창한 인나는 한국어까지 습득, 4개국어를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어 전공자는 인나 학년에 10여 명 정도다.
한국의 어떤 문화가 인나의 마음을 끌었을까. "러시아와 비교하면 좀 다른 '효도' 문화"라고 대답한 인나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드라마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한국 남자의 모습이 오히려 좋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딱 한 번 방문했다. 인나는 "2016년에 두 달 동안 한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서울, 대전, 부산 등을 돌아다녔는데 특히 바다가 있는 부산이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무엇을 하는 걸까.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인나가 맡은 임무는 티켓을 확인하는 것이다. 경찰들과 협의해 암표상을 단속하고 티켓에 문제가 발생하면 통역까지 해야 한다. 정작 경기는 보지 못한다.
"경기를 보지 못해 정말 아쉽다"는 인나는 "사실 축구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한국대표팀이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자원봉사 신청서를 냈다. 내 고향에 한국 대표팀이 온다니 벅찬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나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축구의 묘미를 알게 됐다. 브라질과 스위스 경기가 여기서 있었는데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하고 친절한 모습에 즐거웠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축구가 좋아졌다"고 활짝 웃었다.
기자가 요청한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분명했다. 인나는 "내 고향인 로스토프나도누라는 도시를 한국에 많이 알리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한강처럼 야경이 아름다운 돈강이 흐르고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수제햄버거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맥주도 맛있고 푸시킨 거리도 유명하고..."라며 고향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인나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항상 한국분들이 오시지 않을까 주변을 살펴본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이 도시와 이 경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면서 "졸업 후에는 한국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한국어 능력 5급을 준비 중이다. 러시아어를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꿈이다. 러시아에서도 가르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나는 "한국대표팀이 첫 경기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을 대표해 월드컵에 참가하고 이 먼 곳까지 온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오신다고 하니 로스토프나도누는 한국에서 정말 유명해질 것 같다"고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letmeout@osen.co.kr
[사진] 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