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도 16강이 목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자주 볼 수 있었던 세계 전문가들의 한국 축구에 대한 한 줄 평가였다.
이 말대로 됐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도전이 조별리그에서 멈췄다. 1승 2패를 기록, 2014 브라질 대회에 이어 또 한 번 16강 문턱에서 좌절됐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패했던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을 꺾는 파란을 선보였다. 독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이자 이번 대회 우승후보였다.
▲ '참가에 의의'를 둔다?
한국은 FIFA랭킹 57위 국가다. 월드컵 직전에는 61위였다. 이번 대회 참가국 랭킹만 보면 한국은 사실상 참가에 의의를 둔 셈이다. 하지만 FIFA랭킹이 각국 대표팀의 전력을 다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은 둥글다'는 명언이 아직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KBS 해설위원으로 나선 이근호는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16강을 당연하게 바라봤는가"라고 말해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해설위원이기 이전에 얼마 전까지 대표팀에 몸 담았던 현역 선수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경솔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근호의 말은 동료들을 감싸기 위해 한 의도였다. 하지만 '대표팀들은 어떤 각오로 월드컵에 나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선배들이 이룬 업적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4강 업적이 어쩌다 한 번 있었던 우연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 '유종의 미'에 만족하는 한국축구
신태용호는 실패했다. 올인했던 스웨덴전에서 패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실점하지 않는 전략은 옳았다. 하지만 이기기 위한 전술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동시에 신태용호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전혀 뜻밖의 독일전에서 승리했다. 실낱같던 경우의 수를 넘어설 뻔 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한국축구는 또 한 번 4년의 시간을 벌었다. '탈락했지만 잘했다'는 평가 속에 국민들에게 작지 않은 희망을 안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축구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독일전이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한 번의 긍정적인 결과가 앞에 있었던 수많은 부정적인 결과들을 한순간에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 4년마다 반복되는 '뼈 깎는 노력'
벌써 감독 선임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실상 월드컵 종료로 계약이 끝난 신태용 감독으로 계속 갈 것인지, 다른 감독으로 교체할 것인지를 두고 말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자기반성은 없이 벌써 4년 후를 논의하고 있는 셈이다. 책임질 사람은 오직 감독 뿐이다. 새로운 감독이 등장하면 모든 것이 새로운 시스템과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착각이 시작됐다. 이는 2002년의 업적을 시스템으로 고착시키거나 그를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우연'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2014년 브라질 대회 실패 후 "뼈를 깎는 노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후에도 그런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백서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국 이영표 KBS, 박지성 SBS 해설위원들의 말이 맞았다. 누구도 이번 월드컵에 대한 실패의 책임은 묻지 않고 있다. 또 다시 월드컵 때마다 벌어지는 구태를 답습하려 하고 있다.

이 위원은 한국축구에 대해 "우리는 현상에서 문제점을 찾는다. 현상이 잠깐 좋으면 착각한다"면서 "4년마다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돼야 할 월드컵이 팬들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협회는 물론 모두가 변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보라. 다시 4년 후 카타르 월드컵으로 관심이 갈 것이다. 거기서 한국축구 문제점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라며 "아마 내 말을 녹음해뒀다가 4년 후 다시 틀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4년전 한 말을 지금 내가 다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 위원은 "한국 축구는 혁명적인 변화, 환골탈태적인 변화, 전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약간 변하고 조금 더 발전하고 이렇게해서 한국 축구가 발전할 건 아니다"면서 "지금 안하면 100년 200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위원 역시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바꿨다고 팬들에게 보여주지만 그것이 미래의 한국 축구를 위한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많은 이들이 축구협회를 비난한다. 축구협회도 비난받을 것은 받고 고쳐 나가야 한다. 축구협회와 관계된 많은 이해관계가 있다. 그 이해관계가 섞여 있는 곳에서 희생을 하지 않고 자신들 것만 찾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한국 축구가 앞으로 20년, 30년 더 성장해서 세계 축구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희생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기희생을 안고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letmeout@osen.co.kr
[사진]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