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커브’ 이승진, SK 전반기 최고의 발견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07.08 10: 44

손혁 SK 투수코치는 지난 2월 플로리다 전지훈련 당시 한 투수의 투구를 보다 내심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손혁 코치의 시선이 향한 선수는 우완 이승진(22)이었다. 지난해 11월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와는 다른 커브를 던지고 있었다.
손 코치는 가고시마 캠프에서 이승진을 처음 본 뒤 변형 패스트볼은 물론 커브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선발로는 아직 미지수지만, 불펜으로 뛰며 짧은 이닝을 소화한다면 어색함까지 더해 타자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봤다. 손 코치는 시즌 중에도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제구력까지 갖춘다면 필승조 요원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신했다.
이승진의 커브는 12시 방향에서 6시로 뚝 떨어지는 정통 커브다. 낙차가 크다. 손 코치는 “커브를 던지는 선수는 많지만, 이처럼 정통 커브를 던질 수 있는 투수가 현재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서 “이건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선천적인 재능에 많이 좌우된다. 신이 내린 커브라고 보면 된다”고 칭찬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승진은 플로리다 캠프에서 슬러브를 던지고 있었다.

손혁 코치는 처음에는 이승진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뒀다. 이승진은 이에 대해 “너클 커브의 제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틀어 던지는 연습을 했다”고 털어놨다. 1군 진입을 위해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손 코치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원래 커브가 좋다. 그 커브를 던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승진도 그에 따랐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커브다.
이승진은 자연적으로 조금씩 휘는 패스트볼에 타자의 타이밍을 순식간에 뺏는 커브를 앞세워 1군 무대에 연착륙했다. 지난 5월 1일 1군에 합류해 시즌 1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43을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큰 점수차로 지고 있거나 이기고 있을 때 등판했지만, 점차 접전 상황에서 나오더니 최근에는 사실상 필승조 요원으로 뛰고 있다. 2군에서 올라온 어린 투수 중 가장 오랜 시간이 버티면서 구단의 기대치를 증명했다.
사실 오키나와 캠프 때까지만 해도 ‘야탑고 3총사’(이승진 정동윤 이원준) 중 가장 적은 주목을 받았다. 1·2차 캠프를 완주했으나 등판 기회는 거의 없었다. 시즌 개막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승진은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캠프를 진행하면서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2군에서도 성적보다는 자신의 주무기를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군 평균자책점이 8.49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2군 코칭스태프가 이승진을 자신 있게 추천한 배경이었다. 1군 메이저투어도 전환점이 됐다. 이승진은 “손혁 코치님이 보시더니 폼은 신경 쓰지 말고, 자신 있게, 세게 던지라고 주문하셨다. 그 후 2군에 내려가서 그 점에 중점을 뒀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안주하는 기색은 없다. 이승진은 “접전 상황에서 기회가 올 때 더 잘 던져야 한다. 그런데 한 번씩 잘 안 되고 제구가 왔다 갔다 한다. 패스트볼이 좋을 때는 변화구가 좋지 않고, 변화구 제구가 잘 될 때는 패스트볼 제구가 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자신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진단했다. 좀 더 일관성이 있는 투수가 되어야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이승진의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찾아올 체력적 고비를 넘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승진은 “지난해 상무에서는 나보다 좋은 투수들이 더 많아 등판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 시즌에 10이닝도 못 던졌다”고 웃으면서 “이렇게 길게 시즌을 치러보는 것이 처음이다. 부상도 조심해야 하고, 체력도 관리해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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