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의 문유석 작가가 14회 방송을 앞두고 극 중 한세상 입장에서 쓴 심경글을 올려 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 연출 곽정환)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4부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 분)은 ‘꼰대’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인생 선배’이자 이상과 원칙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박차오름(고아라 분)과 임바른(김명수 분) 사이에서 한세상은 버럭거리기만 하고 돈을 벌기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심사숙고해 판결하는 한 세상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를 집필한 문유석 작가가 오는 9일 방송되는 14회 방송 전 자신의 SNS에 한세상의 입장에서 쓴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문유석 작가는 “고시촌 낭인 생활을 오래 하다가 겨우 합격해서 동기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대학도 법원에서 보기 드문 듣보잡 학교. 법원의 주류 엘리트 코스를 밟기에는 출발부터 글러먹었다. 나도 잘 안다. 법원 수뇌부가 가장 무서워한다는 ‘출포판’이다. 출세를 포기한 판사”라고 한세상을 설명했다.
그는 “법정에서 성질 못 참다가 ‘막말 판사’ 사건도 여러 번 일으켰다. 회식 좋아한다고 꼰대 소리도 들었다. 배석판사들을 도제식으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어디서 말 한마디 안 지려 드는 희한한 지지배가 나타나서는... 보아하니 부잣집 딸내미 같은데 온실 속의 화초가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판례가 어떻고 미국 논문이 어떻고 줄줄 외우는 싸가지 우배석 녀석도 꼴보기 싫다. 뭣이 중헌디”라고 공감력을 장착한 이상주의 박차오름과 원칙을 내세우는 임바른을 언급했다.
이어 “고시도 늦고 결혼도 늦고 모든 게 늦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다른 판사들과 달리 세상의 무게를 안다. 처자식 건사해야 하는 가장의 책임감을 알고, 사람이 먼저 먹고 살아야 하기에 밥숟가락의 무게가 세상 무엇보다 무거움도 안다”라며 극 중 인턴사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부장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공진단으로 버티며 인상 쓰기 바빴는데, 지내다보니 이 녀석들 쓸만하다. 매사에 들이받는 맹랑한 초임 판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느새 잃어버린 내 초임 때의 결기를 이 녀석에게서 본다”라고 박차오름과 임바른의 진심을 알고 그들을 이해하게 된 한세상을 표현했다.
지난 ‘미스 함무라비’ 방송에서 재벌 NJ그룹의 사위이자 민용준(이태성 분)의 자형인 세진대학교 주형민 교수의 준강간 사건을 맡아 징역 4년을 판결했던 민사44부. 총수 일가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하는 NJ그룹에 의해 박차오름이 마녀사냥을 당하며 역대 최악의 위기에 몰리게 될 전망.
문유석 판사는 한세상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박차오름에 대해 “그런데 온 세상이 이 맹랑한 초임 배석 녀석을 핍박한다. 당돌한 녀석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꼴을 보자니 속에서 천불이 치민다. 대책 없을 만큼 세상에 대해 한없는 선의를 품는 녀석인데, 온 세상이 잔인하게 녀석을 핍박한다. 내 새끼를 핍박한다. 선의를 외롭게 두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나는”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했다.
한세상은 박차오름을 향한 비난에 직접 맞서며 전면에 나서게 된다고 예고하고 있다. 박차오름과 임바른을 ‘내 새끼’라며 그 누구보다 아끼는 그가 박차오름을 위해 나서는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듯하다.

이하 문유석 작가 전문.
['미스 함무라비' 14회를 앞두고]
고시촌 낭인 생활을 오래 하다가 겨우 합격해서 동기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대학도 법원에서 보기 드문 듣보잡 학교.
법원의 주류 엘리트 코스를 밟기에는 출발부터 글러먹었다. 나도 잘 안다. 법원 수뇌부가 가장 무서워한다는 ‘출포판’이다. 출세를 포기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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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성질 못 참다가 ‘막말 판사’ 사건도 여러 번 일으켰다.
회식 좋아한다고 꼰대 소리도 들었다.
배석판사들을 도제식으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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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서 말 한마디 안 지려 드는 희한한 지지배가 나타나서는... 보아하니 부잣집 딸내미 같은데 온실 속의 화초가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판례가 어떻고 미국 논문이 어떻고 줄줄 외우는 싸가지 우배석 녀석도 꼴보기 싫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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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도 늦고 결혼도 늦고 모든 게 늦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다른 판사들과 달리 세상의 무게를 안다.
처자식 건사해야 하는 가장의 책임감을 알고,
사람이 먼저 먹고 살아야 하기에 밥숟가락의 무게가 세상 무엇보다 무거움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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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문에서 욕 들어먹을 것을 알면서도 음주운전한 운전사의 면허를 칼같이 날려버리지 못하겠다. 자꾸 망설이게 된다.
딸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인턴 사원한테 이상한 카톡 보낸 부장놈 면상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해고까지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어 망설이게 된다. 그 놈은 밉지만 그 놈의 처자식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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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판사질을 20년도 넘게 했는데 왜 갈수록 더 자신이 없어지는 걸까. 그런데 햇병아리 배석판사놈들은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날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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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단으로 버티며 인상 쓰기 바빴는데, 지내다보니 이 녀석들 쓸만하다. 매사에 들이받는 맹랑한 초임 판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느새 잃어버린 내 초임 때의 결기를 이 녀석에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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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망설임들이 어쩌면 변하는 세상의 발목을 잡는 고집일지도 모른다. 시민들을 좌절시키는 무책임한 온정주의일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은 발전하나보다. 내가 못보던 것을 이 젊은 녀석들이 본다.내가 판사를 너무 오래한 건가. 과거는 미래에게 양보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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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온 세상이 이 맹랑한 초임 배석 녀석을 핍박한다.
당돌한 녀석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꼴을 보자니 속에서 천불이 치민다.
대책 없을 만큼 세상에 대해 한없는 선의를 품는 녀석인데,
온 세상이 잔인하게 녀석을 핍박한다.
내 새끼를 핍박한다.
선의를 외롭게 두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kangsj@osen.co.kr
[사진] 스튜디오 앤 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