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1·2위 팀의 수장들이 승리를 위해 강수를 주고받았다. 결국 웃은 것은 SK였고, 이 숨 막히는 승부를 지배한 선수는 베테랑 채병용(36·SK)이었다.
SK는 25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11-5로 이기고 전날에 이어 2연승을 달렸다. 경기 최종 스코어만 보면 SK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할 가능성이 있는 두 팀이라 그런지, 벤치의 승부수가 연이어 나오며 경기 중반까지 스코어와 관계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SK는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7월 상승세를 이어가며 위닝시리즈를 조기에 확정지을 수 있었다. 반대로 두산은 여유 있게 선두를 지키고는 있지만 연패는 당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런 상황 때문이었을까. 이날 김태형 두산 감독과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나란히 평소 보기 드문 승부수를 던졌다.

먼저 김 감독이 움직였다. 두산은 선발 유희관이 1회부터 고전하며 4점을 내줬다. 그런데 김 감독은 2회 시작부터 투수를 교체했다. 이현호가 유희관을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아무리 부진하다고 해도 포스트시즌도 아닌 정규시즌에 선발투수를 2회에 교체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만약 실패할 경우 불펜 운영에 후유증까지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승부수는 이현호가 2회 추가 3실점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두산도 추격 흐름을 가져갔다. 1-8로 뒤진 5회 연속 안타가 터져 나오며 2점을 쫓아갔고, 1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힐만 감독이 움직였다. 4⅓이닝을 던져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두 개를 남겨두고 있었던 앙헬 산체스를 전격 교체했다.
대다수의 감독들은 웬만하면 선발투수에게 승리투수 요건을 만들어주려 한다. 산체스가 최대 4실점을 더 해도 앞서는 상황에서 5회를 마치기 때문에 승리투수 요건을 만들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경기 흐름과 산체스의 커맨드 난조가 심각하다고 여긴 힐만 감독은 채병용을 올려 굳히기에 들어갔다.
힐만 감독의 승부수는 대성공이었다. 1군에는 뒤늦게 합류했지만, 콜업 후 중요한 순간에 등판해 베테랑다운 배짱으로 위기를 정리하곤 했던 채병용은 이날도 빛을 발했다. 가장 까다로운 타자인 김재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으며 최대 고비를 넘긴 채병용은 박세혁마저 3루수 파울플라이로 요리하고 절대 위기에서 벗어났다. 채병용은 6회도 무실점으로 막고 1⅔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피칭으로 올 시즌 두 번째 승리를 따냈다.
이는 경기의 승부처였다. 만약 두산이 여기서 2~3점을 더 따라갔다면 남은 이닝을 고려할 때 이날 경기의 양상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두산의 저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병용이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두산의 사기는 크게 떨어지고, SK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구조로 흘러갔다.
결국 SK는 5회 반격에서 나주환의 2점 홈런, 노수광의 솔로홈런으로 사실상 두산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점수가 많이 벌어진 이후로는 더 이상의 특별한 승부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skullboy@osen.co.kr
[사진] 인천=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