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문태종 이을 필리핀전 킬러는 누구? [AG]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8.08.27 05: 40

NBA선수 조던 클락슨(26·클리블랜드)이 버틴 필리핀을 잡을 선수는 누구인가.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27일 오후 12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바스켓홀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전 필리핀전을 치른다. 2연패를 목표로 한 한국이다. 하지만 필리핀전에 패하면 그대로 노메달 탈락이다. 상대팀에는 NBA 선수가 버티고 있다. 우리도 누군가는 영웅이 돼야 한다.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 전 국민이 다 아는 한국농구선수가 있다. 바로 이상민(46) 삼성 감독과 문태종(43·현대모비스)이다.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결정적 한 방으로 필리핀을 탈락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를 우승하는데 있어서 두 선수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 필리핀 침몰시킨 이상민 버저비터 3점슛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한국농구 역사에서도 전설로 남아있다. 전성기를 누리는 센터 서장훈에 신인 김주성이 가세했다. 전희철, 현주엽, 이규섭, 추승균이 포워드를 봤고 문경은, 조상현, 대학생 방성윤이 슈터였다. 이상민과 신기성의 노련한 가드진에 프로농구 MVP 김승현까지 가세한 한국판 드림팀이었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 가드’ 이상민이 코트의 리더였다. 3연승으로 B조 1위를 차지한 한국은 필리핀과 4강에서 만났다. 이날따라 이상민은 유독 부진했다. 종료 8초를 남기고 66-68로 뒤진 한국이 공격에 나섰다. 탑에서 공을 잡은 방성윤이 드리블을 치다가 공을 놓쳤다. 김주성이 몸을 날려 극적으로 이상민에게 패스했다.
공을 잡은 이상민에게 두 명의 필리핀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이 때 이상민은 페이크로 한꺼번에 두 명을 제치고 종료 2초전 3점슛을 시도했다. 공이 그물에 빨려듦과 동시에 경기가 끝났다. 이상민의 한 방으로 한국이 극적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NBA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야오밍이 버틴 중국을 연장 접전 끝에 102-100으로 꺾고 20년 만에 우승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아직도 이상민의 한 방을 잊지 못한다. 지도자가 된 이상민 감독이 2015년 외국선수 물색 차 필리핀을 찾았다. 필리핀 방송은 관중석에 앉아 있는 이 감독을 용케 찾아내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상민 감독은 신동파 이후 필리핀 팬들에게 가장 강렬한 이상을 심었다.
▲ 문태종의 역대급 38득점 원맨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8강 결선리그 H조 2차전에서 한국은 필리핀과 만났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천에서 했지만 필리핀 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안산공단에서 전세버스 네 대를 대절해 단체로 온 팬들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입장권을 소지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체육관에 왔다는 점이었다.
한국팬들은 농구경기가 온라인에서 이미 매진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많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기업판매용으로 돌렸던 남은 표가 현장에서 재판매됐다. 필리핀 팬들이 그 표를 모조리 사들이면서 체육관을 점령하게 된 것이었다. 한 필리핀 팬은 “입장권이 세 달치 월급이라도 사서 들어오려고 했다”면서 엄청난 팬심을 보였다.
이날 한국 가드진은 필리핀이 자랑하는 가드 지미 알라팍에게 속된 말로 박살이 났다. 알라팍은 폭발적인 3점슛과 드리블로 한국진영을 휘저었다. 수비가 좋은 양동근도 앨런 아이버슨처럼 뛰어다니는 그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 한국은 3쿼터 중반까지 16점을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필리핀 팬들의 엄청난 응원열기로 한국은 홈코트의 이점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한국을 멱살 잡고 끌고 간 선수가 바로 문태종이었다. 이날 문태종은 마이클 조던 부럽지 않은 신들린 슛감각을 자랑했다. 공을 잡자마자 거침없이 올라가 3점슛을 쏘아댔다. 문태종이 전반전 21득점을 쏟아내면서 한국은 겨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문태종은 거의 모든 슛을 다 넣다시피 했다. 수비가 문태종에게 몰리자 내주는 패스도 좋았다. 문태종의 대활약에 양희종, 조성민, 김태술도 각성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불과 3분 만에 15점을 따라잡았다.
문태종은 4쿼터 중반 첫 동점 3점슛과 역전 플로터를 꽂았다. 종료 32초전 문태종의 패스를 받은 양희종이 4점 차로 달아나는 3점슛을 꽂으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필리핀은 종료와 동시에 하프라인 버저비터까지 넣었지만 한국이 97-95로 이겼다. 무려 38점을 혼자 폭발시킨 문태종의 공이 가장 컸다.
경기 후 한 필리핀 기자는 본 기자에게 “문태종이 정말 38세가 맞나?”라고 물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필리핀에서만 9명의 기자가 인천에 취재를 올 정도로 필리핀의 농구사랑은 대단했다. 그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흉내내며 강남의 고급호텔에 숙소를 잡았다면서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 패배 후 숙소로 돌아가는 미디어 버스 안에서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2015년 창사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에 왔던 필리핀 기자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첫 마디에 “문태종은 왜 안 왔나?”라고 물었다. “나이가 많아서 동생(문태영)이 대신 왔다”고 답해주니 필리핀 기자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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