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코리아가 이미 출시한 제품의 이름을 바꿨다. 그것도 혼다 브랜드 그 자체나 다름없는 ‘어코드’에서 말이다. 지난 6월 10세대 모델이 출시 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어코드는 당초 ‘어코드 1.5 터보’와 ‘어코드 2.0 터보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출시 됐다. 이랬던 것을 최근 ‘어코드 터보’와 ‘어코드 터보 스포츠’로만 부르기로 했다. 1.5와 2.0이라는 숫자를 빼 버렸다.
혼다 ‘어코드 터보’를 다시 타 보면서 그 이유가 납득이 됐다. 10세대 어코드는 1.5리터니 2.0리터니 하는 배기량 숫자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어코드 터보’를 이해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역설적으로 ‘1.5’를 털어 버리기 위해 또 다른 숫자를 제시할 필요가 생겼다. 9세대 어코드 2.4 가솔린 모델의 제원이다. 2,400cc 직렬 4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이 모델의 최대 출력은 188마력, 최태 토크는 25.0kg.m이다. 이에 반해 10세대 1.5 터보는 배기량 1,500cc 4기통 직분사 VTEC 싱글 터보 엔진을 장착했지만 최대 출력 194마력, 최대 토크는 26.5kg.m을 낸다.

10세대 1.5터보가 이전 세대 2.4 모델보다 더 향상 된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배기량’을 중시하던 시절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어떻게 중형차에 1,500cc 엔진을?”이라며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솔직히 기자도 그런 의구심이 있었다. 단, ‘어코드 터보’를 시승해 보기 전까지만.
어코드 터보는 굳이 ‘배기량 1.5리터’를 이름에 남겨 둘 필요가 없었다. 터보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 배기량은 차의 성격을 규정 짓는 중요한 정보였다. 하지만 다운사이징 된 터보는 자연흡기 그 이상의 성능과 효율성으로 자동차 실생활에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이제는 미련없이 ‘숫자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어코드 터보’가 2018년 이 시점에 혼다 최초로 ‘고성능 고효율’ 엔진을 장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속기 페달에서 오는 묵직함이 인상적이다. 발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가볍지 않다. 서서히 밟을 때는 꾸준하게, 급가속을 요할 때는 지체없이 움직여 주는 반응이 매끄럽다. 발끝에서 믿음직스러운 묵직함이 전해진다면, 대형 고양이과 동물들이 가르랑거리는 듯한 배기음는 귀를 즐겁게 한다. RPM 3000을 넘어서면서 배기음은 더욱 또렷해지지만 민폐 수준은 아니다. 어린 아이의 앙탈이 귀여워 부러 화를 돋우는 장난기가 발동 된다. 가르릉 가르릉 그 소리가 경쾌해 쓸데없이 가속 페달을 밟아 본다. 스포츠모드에서는 스피커에서 튜닝 된 배기음이 흘러나와 심장을 자극한다. 소리를 벗삼아 속도를 올리다 보면 풀액셀을 쓰기도 전에 차는 이미 한계치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따로 스포츠모드를 지정할 수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높은 토크가 필요할 경우에는 핸들에 달린 패들시프트로 간단히 대응할 수 있다.
10단 자동변속기를 쓰는 ‘터보 스포츠’와는 달리 ‘어코드 터보’는 무단변속기(CVT)를 쓰지만 따로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다운사이징 엔진과 CVT를 받아들이면 ‘어코드 터보’는 복합연비 13.9km/ℓ(고속 15.8km/ℓ, 도심 12.6km/ℓ)라는 경제성으로 화답해 준다.

어코드의 주행성능이야 ‘10세대’ 40년이라는 역사와 월드 베스트셀링 세단이라는 평판이 잘 말해주기 때문에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시도한 대담한 디자인 변화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편의성과 안정감을 중시해 답답할 정도로 정적이던 디자인이 도회적 세련미를 찾아 방향을 크게 선회했다. 선과 면의 처리는 파격에 가깝게 대담해졌다. 측면 실루엣은 지붕 뒤쪽을 패스트백으로 처리해 쿠페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끈해졌다. 쿠페의 단점인 뒷좌석의 불편함은 늘어난 휠베이스(전 세대 대비 55mm 신장)와 뒷좌석에 집중적으로 할애해 넉넉해진 레그룸으로 해결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하는 전면부 디자인도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였다. 시원하게 커진 그릴에 혼다 고유의 ‘솔리드 윙’을 가미해 강렬한 인상을 새겼고, 풀 LED 헤드램프와 LED 안개등으로 화룡점정 했다.

반자율주행으로 가는 ‘혼다 센싱’이 ‘어코드 터보 스포츠’에만 장착 돼 있는 건 ‘어코드 터보’로서는 아쉽다. 혼다 센싱은 감응식 정속 주행장치와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추돌 경담 제동 시스템 등으로 구성 돼 장거리 운전에서의 피로감을 덜어주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혼다 센싱 외 각종 편의 사양들은 큰 차이가 없다. 애플 카플레이도 지원하는 8인치 안드로이드 디스플레이, 아틀란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무선 충전시스템, 앞/뒷좌석 열선 시트, 원격 시동 장치 등이 차 안에 있는 시간을 안락하게 해 준다.

일상에 충실한 ‘어코드 터보’가 3,640만 원, 256마력의 화끈한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춘 ‘어코드 터보 스포츠’에 4,290만 원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두 차를 모두 경험해 보니 650만 원의 가격 차는 1.5리터의 부족함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었다. 두 모델이 완전히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차이였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