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경기력이 실망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병역 논란'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에 충격패를 당하더니, 홍콩 상대로는 졸전을 거듭한 끝에 콜드게임으로 끝내지 못하고 역대 처음으로 9이닝까지 치렀다.
팬들의 비난 불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몇몇 선수들을 향한 병역 면제 비난을 넘어서 이제는 대표팀 전체를 향한 비웃음, 실망, 조소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KBO리그에 대한 거품론까지 피하기 어렵다.

# 졸전, 실망의 연속
지난 26일 대만과의 첫 경기에서 실업야구에서 뛰는 사이드암 선발 투수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 5회까지 1실점에 그쳤다. 빠르지 않은 평범한 구속에도 불구하고 쩔쩔 맸다. 구심의 넓은 스트라이크존은 타자들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문제다. KBO리그 올스타급인 타자라면 자신만의 존을 유지하면서 제 스윙으로 극복할 수 있다.
27일 최약체 인도네시아를 15-0(5회 콜드게임)으로 승리한 뒤 28일 홍콩 상대로 더욱 졸전이었다. 2회 1-1 동점을 허용하는가 하면, 5회까지 5-2 접전을 벌였다. 한국의 중학생 수준이라는 홍콩 아마추어 상대로 6회까지 안타 수는 한국 8개-홍콩 6개로 단지 2개 차이였다. 뒤늦게 9회 마지막 공격에서 홈런 4방 등 10득점하며 스코어는 21-3으로 끝났지만 씁쓸한 승리였다.
대만에 12년 만에 패배, 홍콩과 사상 첫 9이닝 경기. 왜 선동렬호는 이렇게 졸전을 거듭하고 있을까. 단기전에서 3경기 중 2경기나 시원하지 않다.
# 금메달 부담감
선동렬 감독은 28일 홍콩 상대로 9이닝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경기 초반 힘들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많아서인지 모든 플레이가 경직돼 있다"며 "중심타선에서 압박감이 많다. 그게 부진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KBO리그를 중단해가며 대표팀를 최정예로 꾸렸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은 병역 면제 혜택이 걸려 있는 금메달 획득이 지상과제다. 금메달을 위해 KBO는 올인했다. 전승을 목표로 했는데, 첫 경기부터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이후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가뜩이나 대표팀 소집 이후 응원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주장 김현수는 출국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무조건 따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 144경기 체력 부담
대표팀 선수들은 110경기 이상을 치르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144경기 체제에서 가장 피곤할 시점이다.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128경기 체제에서 리그를 중단하고 대회에 참가했다. 지금 보다는 경기 수를 적게 치르고 중단했다.
7월 중순부터는 100년 만의 폭염으로 한 달 가량 고생했다. 선동렬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 일주일 가량 합숙 훈련을 하면서 컨디션 조절에만 신경썼다. 연습 경기나 자체 청백전을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고 가벼운 훈련만 실시했다.
투수들의 컨디션은 괜찮은 편인데, 타자들은 이정후와 안치홍 몇 명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부진하다. 대표팀 소집 직전 허리 잔부상이 있던 손아섭과 LG가 치른 전 경기 출장하며 수비 이닝 3위인 김현수(966⅔이닝)는 B조 조별리그 3경기에서 타격감이 바닥이다. 손아섭은 3경기 연속 무안타, 김현수는 8타수 1안타다.
# 안이한 마음가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리그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으로는 실망이다. 금메달을 반드시 따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겠지만, 한 수 아래 팀들을 상대로 알게 모르게 안이한 플레이가 나오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실업선수가 많은 대만, 모두 사회인야구 선수로 구성된 일본보다 더 강하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전에서는 1회 3~5번 중심타선은 모두 초구를 건드려 아웃됐다. 홍콩과의 경기에서 1~2회 연속 상대에게 2루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빠르지 않는 공에 초구부터 큰 스윙이 나오고, 찬스에서 컨택형 스윙을 찾기 어렵다.
선동렬 감독은 "선수들이 잘 안 되다 보니 덕아웃에서 분해하는 모습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덕아웃에서 얼굴을 찌푸리기보다 타석에서 1구 1구에 집중해야 한다.
30일 일본, 31일 중국과 슈퍼라운드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앞서 실망과 비난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승리,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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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카르타=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