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질러진 물이다. 대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후폭풍이 걱정이다.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을 향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여정은 험난 그 자체다.
한국은 지난 28일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예선 3차전 홍콩과의 경기에서 21-3으로 대승을 거뒀다.
겉보기에 한국은 타선의 대량 득점으로 만족할만한 경기를 펼친 듯 하다. 하지만 모두가 5회, 적어도 7회 콜드게임을 예상했던 경기가 9회 정규이닝까지 모두 치러지면서 얻은, 원치 않은 결과다. 9회 타선이 대거 10점을 폭발시켰지만 이미 콜드게임 요건은 멀찌감치 사라진 뒤였다.

한국은 홍콩을 상대로 졸전을 펼쳤다. 5회까지 2점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5점 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5-2로 겨우 앞선 채 5회 콜드게임 요건인 15점 차이를 만들지 못했고 7회까지도 8-3, 5점 차밖에 벌리지 못하며 7회 콜드게임 요건인 10점 차 이상에 실패했다.
한국은 지난 28일 인도네시아전 5회 콜드게임 승리와 같이 이날 홍콩전 역시 콜드게임을 노렸다.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지만 최대한 빠른 이닝에 경기를 끝내 투수진의 체력을 비축해 놓은 채 슈퍼라운드에서 만날 일본전을 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홍콩전에서 9회 정규이닝 경기를 펼치면서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닝이 늘어날수록 부담은 한국의 몫이었다. 투수진 체력 비축은 언감생심이었다. 타선의 초반 침묵은 물론, 벤치의 안이한 판단도 한몫 했다.
한국은 선발 임찬규를 4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렸다. 5회 콜드게임은 쉽지 않겠지만, 7회 콜드게임은 무난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3이닝을 최소한의 투수만 사용하고 끝내겠다는 계산이었을 터. 하지만 타선은 7회까지 콜드게임 요건을 충족시킬만한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벤치의 계산도 완전히 꼬였다.
임찬규의 조기 강판이 불펜 투수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5회부터 이용찬-장필준-함덕주가 차례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4번째 불펜 투수인 박치국은 2이닝 동안 21구를 던지며 경기를 끝냈다. 홍콩이라는 약체를 상대로 4명의 불펜 투수를 소모한 것 자체가 한국 입장에서는 치욕이었다.
한국은 오는 30일, 금메달 길목의 최대 난적인 일본과 만난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꾸려졌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기본적인 실력은 대만 그 이상이라는 평가.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당한 1패를 안고 슈퍼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만큼 일본전은 무조건적인 총력전을 펼쳐 최소 실점-최대 득점으로 승리를 거둬야 한다.
일단 국제대회에서 중압감이 큰 경기에서 검증이 안 된 최원태나 임기영이 선발 투수로 올라올 것이 유력한 가운데 모든 불펜 투수들이 대기해야 하는데 홍콩전 소모한 4명의 불펜 투수들의 체력이 한국에 어떤 변수로 다가올 지 가늠하기 힘들다. 패하면 사실상 금메달 결정전 진출은 물건너 가는 사실상의 '데스 매치'에서 불펜 투수의 체력이라는 변수를 안고 싸워야 하는 한국은 또 하나의 악재를 맞이한 셈이다.
과연 홍콩전 졸전의 대가가 일본과의 슈퍼라운드에서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지켜볼 일이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