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게 자꾸…".
한화 김태균(36)은 19일 마산 NC전을 승리로 이끈 뒤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연신 "최고로 빠른 발"이라고 농담을 건네며 축하했다. 적어도 이날 김태균에게는 방망이보다 발이 빛났다. 전력질주로 내야안타를 만들었고, 상대 실수까지 유발하며 '행운의 싹쓸이'가 됐다.
4-4 동점으로 맞선 9회초 2사 만루 찬스. 앞선 타자 백창수가 3루 파울플라이로 물러나 흐름이 끊긴 상황에서 김태균도 NC 투수 강윤구의 초구를 공략했다. 그러나 배트 끝에 살짝 빗맞은 타구는 김태균에게 기대했던 한 방이 아니었다. 3루 쪽으로 느리게 굴러가는 내야 땅볼 타구, 한화 덕아웃에선 순간 탄식이 흘렀다.

하지만 NC 3루수 지석훈의 수비 위치가 깊었다. 빗물이 떨어진 내야 잔디라 타구도 더 느렸다. 김태균은 뒤도 보지 않고 1루로 전력 질주했다. 지석훈이 맨손 캐치를 한 뒤 1루 송구를 시도했지만 김태균의 발이 빨랐다. 지석훈의 송구는 1루수 옆으로 빠지는 악송구가 돼 루상의 주자가 모두 홈에 들어왔다. 행운의 내야안타와 실책으로 한화가 승리했다.
김태균은 "트레이닝파트에서 관지를 잘해줘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다리 상태가 70% 정도다. 전력으로 뛰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팀에 1점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1루에서 살기 위해 전력으로 뛰었다. 솔직히 타구를 친 순간 창피했지만 코스가 좋았다. 3루 수비 위치도 뒤에 있었다. 최대한으로 뛰면 1루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력 질주 순간을 말했다.
순간의 창피함도 있었지만 간절함이 더 컸다. 그는 "1루로 뛸 때는 창피함을 잊었다"며 "(대주자로 교체된 뒤) 덕아웃에 들어올 때 후배들이 너무 격하게 반응해서 창피하고 쑥스러웠다"고 웃어보였다. 모처럼 발로 만든 안타에 동료들의 축하가 계속 됐고, 김태균도 "내가 워낙 날렵하다"며 넉살 좋게 받았다.
김태균의 전력질주로 한화는 NC를 7-4로 꺾고 3위 자리를 지켰다. 4위 넥센에 2.5경기 차이를 유지했다. 3위 수성이 관건이지 가을야구는 사실상 확정. 지난 2007년 이후 무려 11년만의 감격적인 가을야구가 눈앞으로 왔지만, 김태균은 "지금 그런 감흥을 느낄 때가 아니다. 아직 이르다. 순위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나 역시 컨디션이 완전치 않다. (포스트시즌 전) 최대한 좋은 상태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올 시즌 사구로 인한 손목 부상에 이어 종아리 통증으로 총 3번이나 엔트리 말소됐다. 80일 동안 1군 자리를 비우며 65경기 출장에 그치고 있다. 지난 4일 1군 복귀 후에는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 지명타자로만 나서고 있다. 경기 중후반 대주자로 교체되기도 한다.

여러모로 팀과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남은 시즌 16경기와 포스트시즌에는 경험 많은 김태균의 힘이 필요하다. 그는 "후배들이 어려운 와중에도 분위기 다운 되지 않고 잘해줬다. 이렇게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며 "남은 시즌 나도 뒤에서 후배들을 잘 받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