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 KIA 원정 중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팀의 외국인 타자인 제이미 로맥(32)을 감독실로 불렀다. 오랜 기간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타격 매커니즘의 수정이었다.
외국인 타자들은 타격폼 수정에 대다수가 부정적이다. 코치들도 이런 성향을 알기에 국내 선수들에 비해서는 조언에 신중한 편이다. 특히 로맥은 이미 실적이 확실한 타자였다. 팀의 재계약 대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휴식기 이후 타율이 너무 좋지 않았다. 특유의 장타는 실종됐고, 타율은 2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무수한 내야 뜬공만 나왔다. 3~4경기 부진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SK는 비상이 걸렸다.
로맥의 의욕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태해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하려다 탈이 난 케이스였다. 로맥은 5월 말까지 타율이 3할6푼5리에 이르렀다. 홈런포도 계속 터졌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이 시점에서 로맥은 한 가지 선택을 한다. 장타보다는 고타율을 유지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췄다. 방망이를 움켜잡았고, 모든 초점을 우중간 타구 양산에 맞췄다. 그러려면 공을 최대한 오래 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빠른 공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우중간 타구를 만들기 위해 방망이를 내는 타이밍을 좀 더 늦추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차라리 타율이라도 유지를 했으면 모를까, 타율도 떨어지는 판국에 자신의 장점인 힘까지 제대로 다 활용하지 못하니 타격이 곤두박질쳤다. 9월 18일, 로맥의 타율은 3할6리까지 추락하고 있었다.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우중간 타구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고, 차라리 장점을 살려서 방망이를 힘껏 돌려라”는 조언을 계속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나쁜 경험으로 타격폼이나 방향성 수정에 극도로 민감한 로맥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게 두 달 동안이나 이어졌고, 그 사이 타율을 6푼이나 까먹었다. 결국 보다 못한 정 코치가 힐만 감독과 라일 예이츠 퀄리티컨트롤 코치에게 ‘SOS’를 쳤다. 언어가 통하는 만큼 로맥을 설득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힐만 감독은 광주 원정에서 로맥에게 “부진한 상황에서 타격코치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로맥도 장고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한 번 마음을 먹자 재빨리 행동으로 옮겼다. 항상 부지런한 로맥은 휴식일이었던 17일에도 경기장에 나와 2시간 정도 땀을 흘렸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자신의 나쁜 점을 파악하려 노력했고, 포인트를 좀 더 앞으로 끌고 나오기 위한 훈련도 했다.
18일과 19일 연습 타격 때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정 코치는 19일 경기 전 “결과와는 별개로 (포인트가) 조금씩 앞에서 맞아나가고 있다. 이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웃으며 반등을 예고했다.
그런 로맥은 19일 수원 KT전에서 1회부터 대포를 터뜨렸다. KT 선발 김민의 145㎞ 패스트볼을 제대로 받아쳐 수원 구장을 넘기는 대형 솔로포를 기록했다. 실로 모처럼만에 나온 로맥의 호쾌한 홈런 스윙이었다. 맞는 포인트, 발사각, 힘을 싣는 동작까지 완벽했다. 로맥이 깨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여전히 연습 때는 우중간 타구 양산에 초점을 맞춘다. 로맥은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고 굳게 믿는다. 정 코치도 이견은 없다. 그러나 다양한 변수가 있는 경기에서는 연습처럼 칠 수는 없다. 정 코치는 “박병호도 연습 때는 우중간으로 타구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다르다. 타구 방향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스윙을 한다. 앞에서 맞으면 좌측으로, 조금 늦게 맞으면 우측으로 날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코치는 “로맥은 엉덩이가 빠진 상황에서도 일단 맞히면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다. 그런 장점을 굳이 희석시킬 이유는 없다”면서 “타율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로맥은 벌써 홈런 50개를 쳐 홈런왕을 확정했을 것이다. 그런 능력이 있는 타자”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생각을 바꾼 로맥은 정 코치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김재환(두산)과 박병호(넥센)가 앞서 나가고 있지만, 로맥의 홈런 생산력은 두 선수에 뒤지지 않는다. 홈런왕 레이스가 3파전으로 재점화될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