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표 속출’ KBO의 제안, 저연차 선수들 흔들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10.02 06: 19

KBO(한국야구위원회)가 프리에이전트(FA) 제도 변경을 놓고 선공을 날렸다. 협상 파트너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고민이 읽힌다. 선수협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려면 저연차 선수들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1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FA 제도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KBO 이사회가 제안한 제도 변경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선수협은 KBO의 제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일부 조항에서는 역제안을 하기도 했다.
KBO는 취득연차에 대해 고졸은 8년, 대졸은 7년으로 종전보다 1년씩을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선수협은 고졸과 대졸 관계없이 7년을 주장했다. KBO는 FA 선수를 세 등급으로 나눠 보상절차를 달리 하는 등 그간 선수협이 주장했던 이른바 ‘등급제’ 도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면 선수협은 여전히 보상절차의 문턱이 높다며 더 전향적인 안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연봉구조로 보면 B급 선수들조차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쟁점이 될 FA 계약 상한선에 대해 KBO는 4년 총액 80억 원을 기준으로 삼는 안을 만들었다. 이는 당초 ‘보장 60억 원+옵션 최대 20억 원’에서 구단이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선수협은 이는 논의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며 금액 수정조차 없을 것이라 맞섰다. KBO는 FA 계약 상한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제안도 논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향후 팽팽한 평행선을 그을 것으로 예상된다.
FA 제도 외에 KBO는 부상자 명단 제도 도입도 이번 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선수협은 제도 혜택이 30일에 불과하다며 확대 시행은 물론 오히려 연봉감액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현재 연봉 3억 원 이상의 선수는 부상이 아닌 사유, 즉 부진 등으로 2군에 내려갈 경우 일 단위로 계산해 50%만 받는다. 선수협은 “4년 80억 원도 연봉감액제도 때문에 다 보장된 금액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최저연봉도 논의될 전망이다. 최저연봉은 종전 2400만 원에서 지난 2015년 이후 2700만 원으로 올랐다. KBO는 금액을 정하지는 않았으나 선수협은 단계적으로 4000만 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구단은 몇 년 안에 4000만 원까지 올리기는 부담이 커 이 또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수협은 ‘수용 불가’의 배경으로 선수들의 투표 결과를 들었다.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과반 이상이 불가를 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확한 찬반 득표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다. 선수협 입장에서 볼 때 예상보다 ‘이탈표’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주로 저연차 선수들이 KBO의 제안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선수협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4년 80억 원이라는 FA 계약 상한선이다. 그러나 저연차 선수 대부분은 FA 신청을 하지 못하고 야구를 접는다. FA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어린 선수들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실제 FA 제도안을 받아들이면 저연차 선수들은 이득을 보는 부분이 있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최저연봉이 오른다. 한 구단 단장은 올해 중반 “사회적으로 최저시급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3년 만의 최저연봉 인상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면서 “300만 원 정도만 올라도 이 선수들로서는 한 달 월급에서 차이가 꽤 난다. 최저연봉이 기준점이 된다면 측면에서 2~3년차 선수들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본다. 300만 원 정도라면 구단도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다”고 예상했다.
또한 FA 연차가 줄어드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다. 초대형계약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1년이라도 줄면 그만큼 빨리 거액을 만지는 게 가능하다. 대개 FA를 앞두고 연봉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선수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FA 상한제를 수용하지 않는 이상 이 혜택을 누릴 수 없다. 4년 80억 원이 ‘내 일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에게는 부결이 불만일 수 있다.
KBO와 선수협은 FA 제도 개선안을 놓고 올해 내내 논의를 가졌다. 이에 야구계 일각에서는 “KBO가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고 치밀하게 계산해 선공을 날렸다”는 평가가 많다. 구단이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취득연한축소는 물론, 등급제·부상자 명단·최저연봉에서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한 모양새가 됐다. KBO는 선수협이 반대할 경우 협상 결렬 선언을 통해 제도 변경안을 ‘강행’할 수도 있다.
또 선수협이 FA 상한제를 중심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여론은 선수협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여기에 간담회 때 내놓은 선수협의 제안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선수협이 자신들은 손해를 보지 않고, 요구만 줄줄이 늘어놓으면 KBO와 협상을 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선수협도 뭔가 양보하는 것이 있어야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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