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의 흥행은 영화를 만드는 데 반드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창동 감독은 6일 오후 부산 우동 벡스코 제2전시장 이벤트룸에서 열린 필름메이커 토크에서 영화 제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이 같은 생각을 전했다.
이어 이 감독은 “저의 첫 작품부터 상업영화의 제작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왔다. 같은 영화라 하더라도 독립영화-상업영화의 스태프가 다르다. 저는 시작부터 상업 영화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의 흥행은 반드시 고려의 대상이 된다”라고 밝혔다.

이날 앞서 이창동 감독은 “태풍이 온 것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후에 물러가서 다행이다. 지금 해가 나서 참 좋다”는 인사말을 건네며 토크를 시작했다. 필름메이커 토크가 진행된 ‘플랫폼 부산’ 프로그램은 아시아에서 활동 중인 독립영화인 및 관련 기관 구성을 위해 진행되는 코너이다.
이창동은 영화감독으로서 영화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어떻게 풀어낼지 항상 고민한다면서 결과적인 흥행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요소라고 규정했다. "‘버닝’은 일본 NHK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상업적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시작했다”면서도 “(국내)관객들이 좋아해주실 것 같았지만 흥행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가 조금은 쉽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던 거 같다. 기대 안 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라고 ‘버닝’의 흥행 여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했다.
지난 5월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의 강렬한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연기파 유아인과 전 세계를 사로잡은 할리우드 스타 스티븐 연, 신인배우 전종서가 ‘버닝’에 합류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바. 올 5월 열린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돼 전 세계 관객들 및 평단에 호평 받았다.
일본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 등 세 사람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극중 종수가 작가로서 어떤 소설을 쓸지 고민하는 것처럼 본인 역시 감독으로서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은 매 작품 탄탄한 스토리 텔링과 정교한 구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영화의 진일보를 이끌어왔다. 그랬던 그가 8년 만의 신작 ‘버닝’으로 복귀했기에 수많은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은 당연했다.

이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하게 된 것은 일본 NHK 방송사의 제안이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 한 편씩 한 감독에게 연출을 맡겨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한국 대만 중국 등 4개국에 한 편씩 연출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한국 감독 중 한 명으로)제가 제일 먼저 제안을 받았다”며 “당시 전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프로듀싱을 맡아달라고 해서 젊은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제가 제작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었다. 이에 후배 감독들과 작업을 시작했는데, 일본과 한국의 영화 제작방식이 달라 시간이 안 맞았다. 이에 저와 하려던 두 명의 감독이 못 하게 됐고 대신 저와 3년간 작업해온 오정미 작가가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제가 연출하는 방식으로 하게 됐다”고 영화화를 한 계기 및 과정을 밝혔다.
스티븐 연이 맡은 벤은 원래 배우 강동원이 캐스팅 돼 있었다. 그러나 일본 원작자와 저작권 문제로 제작이 1년 지연되면서 크랭크인이 늦어졌고, 강동원은 ‘버닝’ 다음으로 출연이 예정돼 있었던 작품에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하차하게 됐다고.
이에 이 감독은 “원작자와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1년을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먼저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강동원)가 다른 작품에 들어가야 해 출연을 할 수 없게 됐다. 다른 배우를 찾는 과정에서 스티븐 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며 “저는 ‘워킹 데드’를 못 봤기 때문에 ‘옥자’를 통해 스티븐 연을 알고 있어 상당히 끌렸다. 국제전화를 통해 스티븐 연과 연락을 했는데, 그가 때 마침 3일 후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 우연의 일치가 없었다면 캐스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3일 뒤에 스티븐 연을 만났다. 전화를 할 때 영어로 된 시나리오가 없어서 원작 단편 소설만 읽고 오라고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스티븐 연이 ('버닝' 속)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 공허감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자신 역시 그런 공허감을 경험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인 2세로 살아온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무명배우 생활을 거쳤고 어렵게 인지도를 얻게 됐다.

스티븐 연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배우로서의 언어 감각을 믿었다. 실제로 해보니, 일상 대화에서는 말하는 게 어색하고 서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연기할 때는 다르다. 연습을 통해 대사가 필요로 하는 뉘앙스를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톤으로 말하는 것이 이 감정에 맞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느낄 수 있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이창동 감독은 데뷔작 ‘초록물고기’로 벤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밀양’, ‘시’ 모두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와 함께 베니스 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 ‘오아시스’,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시’를 수상하며 전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았다.
이 감독은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내게 어떤 얘기가 있는지’ ‘내가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 한다”며 “’버닝‘의 종수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소설로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는데, 저 역시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영화를 만들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한다. 제 고민과 종수의 고민이 맞닿아 있었다”고 인물을 그린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좋은 장편 소설은 꽤 볼륨이 있기에 극장 상영용인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기 쉽지 않다. 제 경험상 그렇다. 하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으로 거의 굳어졌다”며 “제 경험상 장편보다 단편소설이 짧긴 하지만, 영화적으로 접목시키면 훨씬 여유가 있고 영화화하기에 좀 더 편안한다”고 했다.
‘버닝’이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기에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수상 명단에서 불발됐다. 이 감독은 수상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칸의 수상작 결정은, 시험지를 채점하듯 모범답안을 내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여러 변수들이 작용한다. 결과가 던져주는 혜택을 보면 거의 복권당첨과 다름없다. 운으로 아무나 된다는 게 아니라, 그 결과를 놓고 (상을 못 탔다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복권의 당첨이 안됐다고 해서 아쉬워하는 것과 같다.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은유적으로 비교해 답변을 마쳤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 및 번외 특별상인 벌컨상을 수상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OSEN DB,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