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의 야구산책] 비판해도 SUN 공적은 무시해선 안된다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8.10.12 14: 00

1982년 제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는 일본과 7승1패 동률에서 우승을 놓고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1-2로 뒤진 8회 김재박의 개구리번트로 동점을 만들고 한대화의 스리런홈런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당시 교과서 왜곡으로 반일 감정이 높은 가운데 일본에게 역전승을 거두자 대표팀은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이 경기의 또 다른 주역은 선동렬이었다. 선발투수로 등판해 2실점 완투승을 거두었다. 그는 마지막 타자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고 두 팔을 번쩍들었다. 불과 고려대 2학년, 19살이었지만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여드름이 가시지 않는 앳딘 얼굴의 선동렬은 마운드에서는 무서움 그 자체였다. 어린 선동렬은 그때부터 대한민국 국보투수였다. 
대학교 졸업후 1985년 후반기에야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은 1986년부터 한국시리즈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밥먹듯이 완투와 완봉을 하면서 전후무후한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통산 평균자책점 1점대(1.20)를 보유했다. 무등산폭격기와 국보투수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한국프로야구의 중흥기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96년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지만 부진했다. 중요한 스프링캠프 기간에 모친상을 당한 이유도 있었고 한국타자에 비해 한 수 높은 일본타자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절치부심했던 선동렬은 시즌을 마치자 귀국을 미루고 루키들이 참가하는 가을 캠프에 들어갔다. 그는 "나는 한국야구를 대표해 일본에 왔다. 반드시 재기해 한국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마음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우며 재기에 성공했고 1999년 우승을 이끌었다.
지도자로 국제대회에도 많은 공이 있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숨겨진 투수코치였다. 엔트리에 막혀 코치로 들어갈 수 없자 외곽에서 전력분석과 코치업무를 병행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아마 투수 언더핸드 정대현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도 그였다. 경기중에는 전화를 통해 투수교체까지 담당했다. 구대성을 최대한 활용해 일본을 연파하고 동메달을 따내는데 기여했다.
2006년 WBC 4강 신화, WBSC 2015년 프리미어 12대회 우승 과정에서도 투수코치로 맹활약을 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는 6년 동안 2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선동렬 감독이 야구대표팀 초대 전임감독으로 선임되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만큼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와 지로자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 십년 동안 야구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해온 공적도 반영됐다. 
선동렬 감독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야구를 모르는 국회의원들의 말도 안되는 질문 끝에 "사퇴하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명확한 증거에 기반한 비판이 아닌 막말 정치쇼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한국야구의 전설이자 명사로 받아야할 대우와 명예는 그 자리에는 없었다. 국감장에 앉아 말을 자르며 호통치던 그들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나라의 명예를 높였던 선 감독은 판공비 포함 연봉까지 말해야 했다. 역풍은 거셌다. 야구팬들은 공분했고 '야알못' 국회의원들은 뭇매를 맞았다.  
선동렬 감독도 사과를 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입대를 미뤄온 오지환을 백업 선수로 발탁해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도 국정감사장에서 "성적만 생각하려다 시대적인 변화를 읽는데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청탁도 없었고 뽑을 당시 개인 성적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 소신을 밝혔다.
이번 대표팀 선발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는 2002년부터 이어온 야구계의 구태와 선발 시스템이었다. 관행에 매몰돼 민감한 병역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한 점도 있었다. KBO는 이번 일을 계기로 선발과정을 포함해 시스템을 고치기로 했다. 그런데 선감독은 금메달을 따고도 나홀로 과도한 비난을 받으며 적폐로 몰리기까지했다. 비판다운 비판을 하면서 국보의 자존심도 생각해주는 문화가 아쉽다.  /스포츠 1국 부국장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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