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올라갔어야 했는데…".
11년만의 한화 가을야구가 막을 내린 23일 고척돔.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2-5로 패하며 1승3패로 패퇴한 한화의 3루 덕아웃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선수단과 미팅을 마친 뒤 박종훈 단장을 만난 한용덕 감독은 "더 올라갔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박 단장은 한 감독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렸다.
선수들도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대전으로 내려가야 할 선수들은 뒤늦게 저녁 식사를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 샤워를 한 뒤 사복으로 갈아입고 버스에 올라탔다. 3차전 호투로 승리 발판을 마련한 장민재는 "이번에 스타가 됐다"는 구단 관계자의 위로에도 "팀이 졌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라고 답했다.

특히 이날 4차전에서 1점차 뒤진 8회 투입돼 볼넷, 안타를 내주며 주자 2명을 남겨놓고 내려온 투수 박상원이 누구보다 아쉬워했다. 뒤에 나온 김범수가 추가 2실점을 하며 한화의 추격 의지가 꺾였다. 3-5로 패배가 확정된 뒤 라커룸에서 박상원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시즌 69경기에서 4승2패9홀드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하며 한화 최강 불펜 일원으로 활약한 박상원은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1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3실점으로 고개를 숙였다. 외국인 선수 제라드 호잉을 비롯해 팀 동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눈물 흘리는 박상원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한화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이 오랜만이라 이렇게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오랜만이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고 난 뒤 베테랑 선수들이 아쉬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또 다른 관계자들도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울컥했다. 준플레이오프가 한국시리즈만큼 큰 무대는 아니지만 지난 10년 암흑기를 끝낸 한화에 올 가을은 남달랐다.
무려 11년을 기다린 가을야구였다. 불과 5일, 4경기 만에 일찍 끝나면서 아쉬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즌 전만 해도 한화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한화 레전드 출신 정민철 해설위원만이 거의 유일하게 5강 후보로 꼽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화의 가을야구, 사실상 보너스 게임이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만큼 아픈 건 없다. 성공적인 시즌이었지만 마지막 경기를 패하면 무거운 분위기가 흐른다. 한용덕 감독은 경기 후 선수단 전체 미팅에서 "올 시즌 고생 많았다. 너무 잘해줘 고맙다. 오늘을 잘 기억하자. 지금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독려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화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3루 관중석에선 홍창화 응원단장의 주도로 마치 경기를 하는 것처럼 뜨거운 응원 릴레이가 이어졌다. 구장 조명이 꺼질 때까지 '최·강·한·화' 육성응원이 쩌렁쩌렁 울렸다. 구장 밖에서도 팬들의 격려와 응원이 계속 됐고, 선수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거나 손 흔들어 답례했다. 한화 관계자는 "올해 우리가 3위로 마쳤지만 팬 사랑은 1위다. 우리 팬들이 자랑스럽다"고 고마워했다.
그토록 기다린 11년만의 가을야구는 이렇게 일찍 끝났지만 한화에 어느 때보다 깊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waw@osen.co.kr
[사진] 고척=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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