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31·SK)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3루수다. 이미 누적 성적으로는 KBO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정 앞에 있는 선수가 많지 않다. 은퇴 시점에는 전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하다.
그런 최정은 올해 알 수 없는 부진을 겪었다. 115경기에서 타율이 2할4푼4리에 머물렀다. 35개의 홈런을 친 것을 보면 홈런 생산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정확성이 당황스러울 만큼 떨어졌다. 0.915의 수준급 OPS(출루율+장타율)도 최정이라는 이름이 붙기에 초라했다. 당장 최정의 지난해 OPS는 1.111이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멘탈의 문제가 가장 컸다. 시즌 초반 성적이 나오지 않다보니 여러 가지로 조급해진 면이 있다”고 짚었다. 시즌 초반 타율이 추락하는 와중에 이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 뭔가 쫓기는 심리로 시즌을 치르는 게 도움이 될 리는 없다.

최정도 이에 대해 담담하게 인정한다.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최정은 “시즌에 들어올 때 딱 뭔가, 내 것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뭔가 틀어져 있었고, 시즌 내내 이를 제 궤도로 수정하지 못했다. 최정은 “정말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타격이 조금씩 올라올 때 당했던 부상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타도 해보고, 야간에 밤새도록 공을 쳐보기도 했다. 정 코치는 “손바닥이 까지도록 치고 온 날도 있었다. 원하는 만큼 친 것”이라고 안쓰러워했다. 다행히 시즌 막판부터 조금씩 타이밍이 맞기 시작했다. SK는 한때 ‘최정 와이번스’라고 불렸다. 최정이 살아나야 팀 공격력도 정상을 찾아갈 수 있다.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잘해도 최정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아쉬웠던 시즌은 어차피 끝났다.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최정의 명성에 큰 흠집이 가는 것은 아니다. 최정을 ‘2할5푼 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포스트시즌을 바라보고 있는 최정이다. 자체 연습경기를 지켜본 구단 관계자들은 “타구질과 타이밍은 물론 표정도 조금 좋아진 것 같다”고 기대를 걸었다. 열흘 넘는 준비 기간은 분명 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을에 강했던 기억도 있는 최정이다.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4할6푼2리,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5할4푼5리(2홈런),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3할5푼7리,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3할7푼5리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자신의 몫을 했다. 2, 4, 15, 33. 한국시리즈만 33경기에 나갔고, 통산 포스트시즌 출전 경기수만 54경기다. 경험도 풍부하고, 실적도 냈다. 기대가 걸리는 이유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신뢰도 굳건하다. 타율이 떨어질 때도 타순만 조정했을 뿐 최정을 꾸준하게 넣으며 감을 살리도록 배려했다. 최정은 그 과정을 “다시 야구를 많이 배우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지금까지 얻은 배움을 실전에서 결과로 보여줄 때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포스트시즌을 가장 고대하고 있을 선수는 최정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