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살아요"..'마이웨이' 김수미, 먹고 요리하고 베푸는 아름다운 삶 [종합] 
OSEN 박판석 기자
발행 2018.10.25 22: 49

 배우 김수미의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남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김수미의 삶은 아름다웠다. 참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멋대로 산다고 하는 김수미는 한결 같이 당당했다. 
25일 오후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김수미가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수미는 '수미네 반찬'에서 함께 하는 김이선과 함께 신안을 찾았다. 김수미는 소금으로 유명한 신안을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수미와 김이선은 함께 염전을 걸었다. 김수미는 창고에 가득 찬 소금을 보고 감탄했다. 김수미는 "다이아몬드 보다 이게 더 좋다"고 감탄했다. 

요리의 대가인 김수미의 요리비결은 어머니였다. 김수미는 "요리하면 다 엄마랑 연결이 된다"며 "쌀 한 번 씻어보지 않고, 서울로 올라왔다. 밥을 안치는 줄도 몰랐다. 엄마가 해준 맛을 떠올리면서 요리를 했더니 맛있었다.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몇 천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엄마를 그리면서 내가 먹어봤던 맛을 만든다"고 비법을 전했다. 
김수미는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털어놨다. 그는 "어머니는 참 불쌍한 연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런 혜택도 못받고 소처럼 일만했다. 위장병을 앓으셨는데, 하얀 소다를 한 움큼씩 입안에 털어드시고 늘 엄마는 아프니까 말이 없었다. 진지하게 엄마하고 대화해 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하얀 머리에 수건 쓰고 맨날 부엌에서 밥 하고 콩밭에서 밭매고 밤에 끙끙 앓는 소리. 엄마랑 같이 잤는데, 엄마가 죽겠다는 소리로 잠이 들었고,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깨면 부엌에서 엄마가 밥을 했다.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젓갈 담그고 김치 담그는 모습만 기억난다"고 했다. 
김수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김수미는 "어머니가 밭을 매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밭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암 같다. 내가 분한 것은 정작 내 엄마에게는 한 번도 내 손으로 밥을 못 해드린게 억울하다. 내가 17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서 식사 모임을 열곤 했다. 황신혜는 갑작스러운 촬영에 당황했다. 황신혜는 "모든게 갑작스러운게 더 많다. 나이가 들면 덜 하실 줄 알았는데, 나이 들어도 똑같다. 제가 20대에 정말 힘든 시기에 김수미 선생님 집에서 식구처럼 먹고 자고 했었다. 너무 편안하게 제 집처럼 있었다.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라서 남다르다. 김수미라는 여자는 정말 탐나는 여자다"라고 했다. 진미령 역시도 김수미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찾아왔다. 진미령은 "김수미한테 욕 듣는 것도 영광이다"라고 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김수미가 사람들을 부르는 이유은 음식 때문이다. 김수미는 "김치나 게장이 맛있게 되면 도깨비 만남을 자주 한다. 한 시간 내로 10, 20명이 다 온다. 다 주부들이니까 자기들이 맛있게 먹고 정리까지 하고 간다. 친구를 만나고 모임을 하는 것도 다 외로워서다. 주부들이 갈 데가 없다. 내가 먹여주고 재미있게 해준다. 내가 평생 돈 벌어서 뭐해 이렇게 즐기고 쓰는 것이지"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수미는 그림을 배우고 있었다. 김수미는 "제가 여태껏 하는 것만 해왔다. 제가 좀 외골수다. 연기, 살림살이만 했다.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려서 걸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부산에 세컨드하우스를 장만했다. 김수미는 "여기에 오면 남편하고 아들 밥해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김수미의 세컨드 하우스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김수미는 당당하게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한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였다. 김수미는 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김수미는 문학도를 꿈꿨지만 우연한 계기로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김수미는 MBC 3기 탤런트로 뽑혔지만 29살에 일용 엄니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수미는 목소리를 바꾸면서 확실하게 주목을 받았다. 김수미는 일용엄니로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했다. 
김수미는 '전원일기'를 그만두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 김수미는 "일용이네를 없앤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다고 했다. 3개월만에 돌아왔는데, 시청자들이 잘 몰랐다. 아무도 '전원일기'가 지겹다고 못한다고 할 때 나는 못한다고 하고 도망갔다. 나는 참을인을 모른다. 내 멋대로 산다"고 했다. 
김수미는 꽃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김수미는 "어린 시절에 하늘을 덮을 정도로 가득 핀 벚꽃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엉엉 울었다. 아버지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는 것을 들으면서 슬프다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제가 울고 있다고 하니까 뛰어 내려왔다. 아버지가 울고 있는 나를 업고 올라오는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추억을 털어놨다. 
김수미는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김수미는 엄청나게 큰 교복을 입고 사투리를 쓰면서 많은 놀림을 받았다. 속상해 하는 김수미는 시골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김수미의 아버지는 촌사람을 촌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흉이 아니다라고 위로했다. 그 때 아버지의 말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라고 고백했다.    /pps2014@osen.co.kr
[사진]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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