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29)는 극과 극의 정규시즌을 보냈다. 전반기에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였지만, 후반기에는 리그 최악의 투수 중 하나였다. 영화라고 해도 이런 롤러코스터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정도다.
체중도 빠지고, 힘도 떨어졌다. 공을 때리는 높이 자체가 낮아진 것에서 문제점을 확연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던지지 않던 포크볼까지 배우며 열성을 보였지만, 로케이션이 되지 않고 자꾸 몰리는 패스트볼이 상대의 먹잇감이 됐다. 등판 후 덕아웃에서 자책하는 모습에서 의기소침이라는 단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선수들도 산체스를 안타까워했다.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인데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응원하는 마음가짐도 있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LG전에서 9회 등판했으나 무너진 산체스를 두고 선수들은 “모처럼의 1군 등판이니 경기 감각이 없었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그런 산체스가 반등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28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 1사 1,2루의 위기 상황에 등판, 김하성 김민성을 모두 3루 땅볼로 돌려세우고 위기를 막아낸 것이다. 8-8 상황에서 만약 실점했을 경우 SK의 9회 공격은 대단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체스는 전력투구로 이를 막아냈고, 9회 박정권의 끝내기 투런 발판을 놨다. 산체스도 김민성을 잡아낸 뒤 큰 모션으로 포효했다.
이날 가장 동료들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선수는 역시 끝내기의 주인공 박정권이었다. 그러나 산체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도 그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산체스가 위기를 막은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산체스를 향한 동료들의 큰 환대는 선수의 기를 살렸다. 산체스도 첫 고비를 잘 넘긴 만큼 향후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
불펜으로 나서면 많은 이닝 소화가 필요없다. 1이닝 정도만 전력투구한다는 생각으로 던지면 된다. 실제 산체스는 이날 최고 155㎞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패스트볼 구속은 모두 150㎞를 넘겼다. 여기에 투심성 구종이 엿보였다. 김민성을 잡아낸 구종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떨어지는 투심에 가까웠다.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코스였다.
손혁 투수코치는 “마지막 공은 정말 잘 떨어졌다”면서 “포심 사인이 났을 때도 간혹 투심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 공조차 150㎞가 넘으니 포심처럼 보였고, 기록원들이 그렇게 구종 분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예회복을 벼르는 산체스가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그렇다면 SK는 정말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skullboy@osen.co.kr